이나리
경제부문 차장
지난 8일 중앙일보 12면에 안타까운 사연이 실렸다. 정신없이 치솟는 물가로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한 여대생 오로라(22)씨 이야기다. 그의 생활비 내역을 훑어보다 흠칫 놀랐다. 통신비가 5만원이나 됐다. 오씨의 한 달 예산은 60만원이다. 숙박을 위한 고시원비(33만원)를 빼면 27만원이 남는다. 이 돈으로 밥 먹고(10만원) 버스 타고(2만원) 최소한의 소비를 한다(10만원). 그런데 통신비가 5만원이라니, 식대의 절반이요 교통비의 2.5배다. 돈이 아까워 저녁을 시리얼로 때운다는 ‘수퍼 짠순이’가 통신비만은 줄이지 못한 이유가 뭘까. 10일 오전 통화에서 그는 더 놀라운 얘기를 했다.
“그것도 대략만 말씀드린 거예요. 실제 내는 돈은 6만원 이상일 때가 많아요.”
오씨는 한양대 4학년이다. 학점 챙기랴 취업 준비 하랴 눈코 뜰 새 없다. 생활비를 벌려고 한 달 60시간씩 커피숍 아르바이트도 한다. 지난해엔 학교 총부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이렇게 바쁜 오씨에게 휴대전화는 없어서는 안 될 생존 수단이다. 대전에서 올라와 혼자 생활하는 그에겐 집전화 같은 대체 통신기기가 없다. 이동이 잦은 만큼 수업 준비와 과제물 해결, 메일 확인도 휴대전화로 하는 게 최선이다. 마침 이에 맞춤한 애플리케이션들이 여럿 나와 있다. 그가 지난해 11월 큰맘 먹고 구형 스마트폰을 장만한 이유다.
“스마트폰을 쓰려면 전용 요금제에 가입해야 한다더군요. 인터넷 사용이 잦을 게 뻔해 고민 끝에 ‘데이터 무제한’(월 5만5000원) 요금제를 택했어요.”
한데 첫 달부터 그보다 많은 요금이 나왔다. 무료 제공된 음성통화량을 초과했기 때문이었다. 스마트폰 요금제 가입자 중에는 이처럼 이동통신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무료 음성·데이터 통신량을 넘겨 추가 요금을 내는 이가 꽤 많다. 미국·일본과 달리 소비자가 자기 생활 패턴에 맞는 요금제를 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씨는 “너무 부담스러워 다시 일반폰으로 바꿀까도 했지만 2년 약정에 묶여 불가능했다”고 털어놓았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효율을 포기할 자신도 솔직히 없다. “이거 없을 땐 어떻게 일하고 공부했나 싶을 정도인걸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8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요즘 통신비에는 각종 문화비가 포함돼 있다. 대통령이 20% 인하를 약속한 건 음성통화료”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통사 CEO들도 요즘 틈만 나면 ‘문화비론(論)’을 설파하느라 바쁘다. 그리 따지면 오씨의 스마트폰 사용료 또한 상당부분 문화비다. 이는 인하 대상이 아닌 걸까. 오씨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미 스마트폰은 생활 필수품의 영역에 들어왔다. 연말이면 사용자가 2000만 명에 이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부처와 이동통신사들이 말이라도 맞춘 듯 때아닌 문화비론을 들고 나오는 건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그보다는 이동통신사망을 빌려 더 싼 서비스를 제공하는 MVNO 사업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천편일률적인 요금제 또한 소비자 선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게 먼저 아닐까.
이나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