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전통과 현대를 반씩 결합하는 게 내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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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베로니카 에트로(37·사진)는 에트로 여성복의 수석 디자이너다. 창업주 짐모 에트로의 4남매 중 외동딸이다. 그는 1997년 런던 세인트마틴스쿨을 졸업한 직후 입사해 지금까지 에트로의 디자인을 맡아 왔다. 그는 ‘브랜드의 대대적인 변신’을 추진하지도 않았고, 젊은 디자이너로서 ‘트렌디한 옷’에도 욕심을 내지 않았다. 브랜드의 상징인 페이즐리 문양(깃털이 휘어진 모양의 무늬)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에 주력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밀라노 에트로 컬렉션에서 만난 그는 “내가 원하는 건 ‘새로운 전통’이다. 클래식한 브랜드 이미지에 현대적인 감각을 똑같이 반반씩 결합시키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쇼에서 보여준 ‘새로운 전통’은 어떤 것인가.

갑옷이 연상되는 묵직한 조끼에 매끈한 실루엣의 치마를 짝지었다.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브랜드의 아카이브(제품·소재·원단 저장소)를 다시 둘러봤다. 옛날 카펫 원단을 발견하고는 영감을 얻었다. 오래돼서 물로 흐린 듯한 무늬들이 굉장히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보통 천에 쓰게 되면 지루할 것 같았다. 페이즐리를 반짝거리는 소재에 얹으면 뭔가 화려하고 감각적으로 보일 듯싶었다. 대신 페이즐리는 카펫에서 받은 영감 그대로 컬러 톤을 낮춰 산화된 느낌이 나도록 했다. 시간에 의해 색이 바랜 느낌이 나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도록 디자인했다. 과거의 유산(헤리티지)이 퓨처리즘(미래주의적) 이미지와 섞인 분위기를 노렸다.”

-에트로 하면 ‘페이즐리’가 생각난다.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지 않나.

“페이즐리라는 문양은 에트로가 처음 만들었다. 그래서 상표 없이도 에트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시각적 언어’가 됐다. 그 의미와 가치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단지 현대적으로 진화시키는 게 내 몫이다. 그래서 언제나 유행하는 무늬들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는 디자인을 선보인다. 꽃무늬·줄무늬·물방울무늬가 트렌드라면 그것을 페이즐리 문양 속에 녹여내는 식이다. 우리 제품을 갖고 있다면 한 번 확인해봐도 좋다.”

-한국에서 에트로는 ‘중년층 브랜드’로 인식돼 있다. ‘젊은 명품’으로 변신하고 싶지 않나.

“에트로는 지금까지 중년 고객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들이 전통을 중시해주기 때문이다. 나이 든 브랜드라고 볼 게 아니라 클래식 브랜드라고 여겼으면 싶다. 우리는 좋은 소재를 찾아내고, 연구를 바탕으로 과거를 재해석한 디자인을 내놓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이것은 요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유행을 따르는 패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시대를 초월해 입고 싶은 옷을 만들겠다는 게 우리의 변치 않는 목표다.”

-에트로 컬렉션을 보면 이국적인 것, 특히 동양적인 분위기를 많이 엿볼 수 있다. 한국의 전통 무늬는 어떤가.

“한국의 전통을 조금 알고 있다. 특히 한복의 컬러에 아주 많은 관심이 있다. 9년 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작품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그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컬러의 조합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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