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년 넘겨…고질병 돼버린 전세난

조인스랜드

입력

업데이트

[안장원기자] 이 정도면 이제 ‘난’으로 표현하기 그렇고 일상이 된 게 아닐까. 병으로 친다면 계속해 몸에 달고 살아야 하는 고질병 말이다. 수도권 전세난 말이다.

전세난이 기록경기에 도전했다. 기간에서 기록 갱신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서울•인천•경기도) 아파트 전셋값의 상승세가 월간 변동률 기준으로 2009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24개월 만 2년간 이어졌다. 수도권보다 한달 앞서 상승세가 시작된 서울은 만 2년을 넘기고 25개월째 오르막길이다.

이는 국민은행이 주택시장 동향을 조사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두번째 최장 기간이다. 전셋값 상승세가 가장 오랫 동안 이어진 때는 서울•수도권 모두 2005년 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27개월이다.

전셋값 상승률에선 이번 전세난이 2005~2007년의 일부 기록을 깼다. 2009년 2월~2011년 2월 서울 전셋값 상승률이 21.9%로 지난번의 21.6%를 앞질렀다.

수도권 기준으론 이번이 19.2%로 지난번 23.7%보다 못 미친다.

2005~2007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세난 역시 끈질고 지겹다. 달리기 선수로 치면 마라톤 선수인 셈이다.

‘속도’에서 본다면 2002년(수도권 전셋값 24.9% 상승) 한 해보다 못하다. 폭발력은 2000년대 초반(2000~2003년 연평균 19% 상승)이 훨씬 강했던 것이다.

병으로 친다면 이번 전세난은 급성이 아닌 만성이다. 야금야금 몸을 갉아먹듯 지속적으로 꾸준히 오르는 것이다. 전셋값이 폭발했던 2000~2003년에만 하더라도 월별 기준으로 듬성듬성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2000년 초반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외부의 날벼락을 맞은 데 따른 갑작스런 병이었다면 2005~2007년과 이번 전세난은 몸 속에서 몸 속에 쌓여온 바이러스가 몸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다.

2005~2007년과 지금의 전세난은 겉으로 보이는 양상은 비슷하지만 원인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지난번은 집값 상승세가 전셋값 상승을 불러왔다. 몸값이 올라갔기 때문에 빌려 쓰는 대가도 커진 것이다. 집값 상승세가 전셋값 상승세에 영향을 미치는 일반적인 형태다.

2003년 10.29대책 이후 침체된 주택시장이 2005년 회복되기 시작한 뒤 200년 들어 본격적인 상승무드를 타면서 전셋값이 동반 상승했다. 2006년 수도권 아파트값은 24.6%나 급등했다.

당시 중소형보다 중대형 집값이 많이 올랐는데 전세시장에서도 그랬다. 그만큼 매매시장 움직임이 전세시장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지금은 중소형 전셋값이 강세다.

이번 전세난은 집값 상승이 아닌 집값 약세가 불러왔다.

시작에 있어 매매값에 비해 전셋값이 훨씬 낮았다는 점은 비슷하다. 2005년 수도권의 아파트 매매값 대비 전셋값 비율(전세비율)은 50.1%로 2년새 10% 포인트 가량 떨어졌다.

2009년 2월 전세비율이 39.9%로 역시 그 이전 2~3년간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전세비율이 낮다는 것은 몸값에 비해 전셋값이 저평가됐다는 신호인 것이다.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공급부족이 계기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세난이 시작된 2005년과 2009년의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은 그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2005~2007년과 비슷하면서도 달라

입주물량보다 전세시장에 나오는 물량이 줄어 전세난을 부채질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월세 증가다.

당시나 지금이나 전세난이 진행되면서 저금리가 배경이 돼 전세를 월세나 보증부 월세(반전세)로 돌리면서 임대시장에서 전셋집이 차지하는 비율이 2%포인트 가량 줄었다.

지난번이나 이번이나 금리가 이전보다 떨어진 상태다. 상대적으로 저금리인 것이다.

지난번과 이번 전세난 원인에서 가장 큰 차이는 전세수요에서 읽을 수 있다. 지난번과 달리 이번엔 집값 상승 기대감이 꺾이면서 매매수요로 돌아야 할 전세수요가 계속 전세시장에 머무는 것이다. 초과수요인 것이다.

이전과 달리 집주인들의 보상심리도 작용했다. 집값이 약세를 보이자 집 주인들이 시세차익 대신 임대수입이라도 늘리기 위해 전셋값을 세게 부르는 것이다. 집값 침체가 이번엔 되레 전셋값 상승을 부추긴 것이다.

지난번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외환위기 이후처럼 떨어진 전셋값이 반등하는 기저효과도 있었다.

결국 이번 전세난은 각종 원인들이 총집결된 셈이고 이들 개별 요인들이 병목현상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전세난이 지난번을 추월하는 데 3개월이 필요하다. 현재 추세로 본다면 지난번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번엔 전셋값 상승세가 2006년 말부터 약해졌다. 2007년 들어서는 1월 0.8%에서 2월 0.5%, 3월 0.6%, 4월 0.4%로 낮아지다 하락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전셋값 상승률이 올 들어 더욱 높아졌다. 1월 1%, 2월 2.1%다. 기운이 빠졌다고 보기엔 아직 이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변수가 집값이다. 지난번엔 그 이전 해까지 기고만장하던 집값이 확 꺾이더니 전셋값도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지난 번과 반대로 비실거리던 집값이 꿈틀대면서 전셋값에 힘을 뺄지 모르겠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