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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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도전

72년 12월 중순 어느날 나는 청와대 오원철(吳源哲·71)
경제 2수석의 방에서 그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레이저 무기와 야시(夜視)
장비를 개발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吳수석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나도 물러서지 않았다."국방과학연구소는 이제 자리를 잡았습니다.앞으로는 제 전공을 살리고 싶습니다.저는 이론물리를 공부했기 때문에 레이저 분야는 자신이 있습니다."

吳수석은 더이상 고집부리지 말라는 듯 잘라 말했다."韓박사,대체 왜 이래.그건 안된다니까.레이저는 새로운 첨단 분야란 말이야.아무리 군인이 공부를 많이 했어도 거기까지 손대는 건 무리야." 吳수석은 레이저와 같은 첨단분야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나 원자력연구소에서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한 마디로 내 실력을 못믿겠다는 것이었다.吳수석은 내가 혹시 기분이 상했을까 봐 타이르듯 이렇게 말했다.

"병참물자는 군대에서 대단히 중요해.그러니 韓박사가 계속 맡아야 돼.이제까지 韓박사가 손 댄 것마다 모두 성공했잖아." 나는 내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병참물자는 제 전공과 다릅니다.이젠 다른 사람에게 맡기십시오.레이저 무기 개발에 대한 저의 구상을 보고서로 작성하겠습니다."

당시 국방과학연구소가 새로 레이저 무기와 야시장비 개발 사업에 착수하려면 청와대와 국방부의 허락이 필요했다.방위산업을 총괄하고 있는 吳수석을 찾아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그러나 吳수석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나도 오기가 생겼다.그때부터 나는 다른 일은 제체두고 레이저 무기 개발 보고서 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군 출신 과학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보고서는 물리학 이론을 토대로,군인으로서의 현장감을 최대한 살리는 데 역점을 두었다.민간과학자들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이 점은 따라올 수 없었다.결국 보고서는 레이저 무기를 단계별로 개발하는 무기체계 중심으로 작성됐다.73년 1월 중순,보고서를 들고 다시 吳수석 방을 찾았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별로 반기는 눈치가 아니었다.'또 레이저 무기 얘기를 하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나는 그의 태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이런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지난번 말씀드렸던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나는 그의 주목을 끌기 위해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그런데도 吳수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무슨 보고서?" 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도 주저없이 "레이저 무기 개발 보고서" 라고 대답했더니 그제서야 그는 "아,그거···그래 놔 두고 가 봐" 하며 탐탁치 않게 말했다.일주일 후 吳수석이 전화를 걸어 왔다.지난번과는 달리 목소리가 아주 밝았다."韓박사,나요 나.지난번에 내게 준 그 보고서 있잖아.내일 모레 청와대에 들어와 브리핑 좀 해 봐." 보고서가 마음에 든다는 얘기였다.뭔가 서광이 비쳤다.

1월말 어느날 오전 10시.吳수석을 비롯,청와대 경제비서관·국방부 방위산업국장·상공부 공업국장 등 8명이 吳수석 방에 모였다.레이저 무기 개발에 대한 브리핑을 듣기 위해서였다.나도 '뱃심 좋은 사람'으로 알려졌지만 이날 만큼은 매우 긴장했다.국방과학연구소가 레이저 무기 개발을 할 수 있는 지 여부가 판가름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나는 지시봉으로 브리핑 챠트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레이저 무기 개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하나는 개발 가능한 무기를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기술을 쌓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 연구를 먼저 한 다음 무기를 만드는 것입니다.저는 전자(前者)
가 옳다고 봅니다.그래야만 성과도 올리면서 기술을 빨리 익힐 수 있습니다." 좌중을 둘러 봤더니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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