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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윈 잡스, 얇아진 아이패드 … “기술과 인문학 융합이 애플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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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황제의 귀환’이었다. 2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예르바부에나예술센터. 애플 아이패드2 공개행사에 참석한 청중 사이에 일순 환성이 터져 나왔다. 열렬한 기립박수 속에 등장한 이는 건강 문제로 참석이 불투명하다던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였다.

 1월 중순 무기한 병가(病暇)를 낸 이래 최근엔 ‘6주 시한부설’에까지 휘말렸던 잡스였다. 이전보다 더 말랐지만 곧 죽음을 맞을 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옅은 미소를 머금은 그는 여전히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제품(아이패드2) 개발을 위해 애써 왔습니다. 그랬기에 오늘 이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어 1시간15분에 걸친 시연회를 차분히 이끌었다. 힘이 달려 몸이 흔들리거나 음성이 떨리는 기색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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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겨냥 ‘막강 앱스토어’ 자랑=시연회 시작은 언제나처럼 지난 몇 개월간 애플이 거둔 성과에 대한 것이었다. 잡스는 애플 온라인 장터의 위력을 강조하는 데 유독 공을 들였다.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이하 앱) 장터인 ‘앱스토어’, 전자책 장터 ‘아이북스’, 음악과 오디오 프로그램 장터 ‘아이튠스’가 그것이다. 잡스는 “세 장터 모두에 (결제를 위한) 계정을 만든 아이디(ID)가 2억 개에 이른다”고 자랑했다. 그만큼 많은 세계인이 애플에서 앱과 콘텐트를 구매하고 있다는 뜻이다. 거대한 온라인 생태계는 강적 구글에 맞서는 애플의 가장 위력적인 무기다.

 경쟁자들에 대한 독설도 잊지 않았다. 특히 삼성전자 갤럭시탭을 겨냥해 눈길을 끌었다. “그들(삼성)에 따르면 셀인(sell-in)은 200만 대로 공격적이었지만 셀아웃(sell-out)은 그보다 적었다더라”고 폄하했다. 셀인은 제조사가 유통업체에 판매하는 것, 셀아웃은 유통업체에서 소비자로의 판매를 뜻한다. 잡스가 이 발언을 하는 내내 스크린에는 구글의 태블릿PC용 운영체제(OS)인 ‘허니콤’, 이를 탑재한 신제품을 내놓은 삼성전자·모토로라·림·HP의 로고와 ‘2011, 짝퉁(copycat)의 해?’라는 문구가 크게 박혀 있었다. 이어 잡스는 “우리 경쟁자들은 태블릿PC를 여전히 PC의 범주로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또 “태블릿PC는 ‘PC 이후의 무엇(post-PC)’이며 누구나 별도 학습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보다 직관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잡스는 디지털 기기에 대한 자신의 오랜 신념과 철학을 밝히는 말로 시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게 애플의 DNA”라고 말했다. “기술과 인문학(liberal arts)을 융합하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야만 가슴을 울리는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잡스 멀쩡해 보이는 건 ‘착한 암’ 덕분?=의학계에선 투병 중인 잡스가 열정적 시연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로 그가 앓고 있는 병의 특성을 들고 있다. 잡스가 앓고 있는 병은 췌장암 환자 10명 중 1~2명꼴로 발병하는 신경내분비암이다. 일반 췌장암과 달리 진행이 늦고 통증도 적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규택 교수는 “잡스가 그만큼 버틴 건 암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 암은 온몸으로 암세포가 퍼졌을 때를 제외하곤 통증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신경내분비암에 딱 들어맞는 약은 없다. 이 교수는 “잡스가 임상시험 단계인 신약을 이것저것 써 보고 있을 텐데 약 복용을 쉬는 기간엔 고통이 없다. 지금이 그 시기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전문가들은 잡스가 완치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서울대병원 허대석(종양내과) 교수는 “잡스의 암은 천천히 자라는 것이어서 한동안 더 생존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승우 교수는 “잡스는 암이 재발했기 때문에 완치 가능성이 0%”라며 “5년 후에는 말기 상태로 버틴다 해도 10년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나리·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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