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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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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불어닥친 독재타도의 열풍에 국제유가가 춤을 추고 있다. 국제유가는 알제리와 이집트에서 반독재 시위가 벌어지면서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리비아에서 유혈사태가 빚어지자 곧장 심리적인 억제선이라 여겨졌던 배럴당 100달러 선을 가볍게 넘어섰다. 다행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생산량을 늘려 리비아의 원유수출 부족분을 메우겠다고 나섬에 따라 유가의 급등세는 한 풀 꺾였지만 언제 다시 오를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

 사실 생산량만 보면 리비아 사태가 악화돼 원유수출이 전면 중단된다 해도 세계적인 석유수급에 큰 차질을 주진 않는다. 리비아의 하루 원유생산량은 165만 배럴로 세계 석유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추가 증산능력(하루 400만 배럴)만으로도 능히 부족분을 메우고도 남는다. 또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로 곤욕을 치른 서방 선진국들은 만일의 석유공급 차질에 대비해 대략 50일치의 전략적 원유를 비축하고 있다. 중동·북아프리카의 불안정 상태가 장기화하지만 않는다면 당장 석유물량이 부족해서 세계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국제유가가 단기간에 급등한 것은 기름값이 현물시장에서의 수급상황뿐만 아니라 장래의 수급상황에 대한 예상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원유수요가 줄어들면서 한때 배럴당 36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그러다 지난해 아시아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자 줄곧 오름세를 이어왔다. 수요가 한창 늘어날 시점에 터진 중동·북아프리카 사태가 유가를 임계점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수급이 빠듯한 상황에서 일부 석유수출국의 공급 차질이 유가폭등의 기폭제가 된 셈이다.



 어쨌거나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독재·전제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로 한 발짝 다가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다. 그러나 그 여파로 빚어진 국제유가 급등이 세계경제에 적지 않은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국제유가의 급격한 오름세는 세계적인 물가상승을 초래하고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공산이 크다. 과거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에는 어김없이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찾아왔다. 한편에선 기름값 상승에 따른 인플레가 일어나고, 다른 한편에선 소비수요가 줄어 성장이 둔화되기 때문이다. 여기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 카드를 쓰게 되면 성장률을 더욱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전체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원유의 82%를 중동지역에서 들여오는 우리나라는 중동발 오일쇼크의 충격을 피해갈 방법이 없다. 당장 올해 배럴당 85달러를 상정하고 잡았던 5% 성장률과 3% 물가상승률 목표는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물가는 0.12%포인트 오르고 성장률은 0.21%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산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물가 0.3%포인트 상승에 성장률 0.35%포인트 하락으로 파장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했다. 원유 수입대금의 증가로 경상수지의 악화도 불가피하다. 주가는 이미 이런 우려를 반영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유가폭등에 대비해 에너지관리 경계 태세에 들어가고, 원유 도입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비축유를 방출한다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만으로 오일쇼크를 피해갈 순 없다. 일각에선 유류세 인하를 포함한 국내 유가 안정대책을 주장하지만 여전히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결국 최후의 대책은 유가 상승을 감내하고 견디는 것뿐이다.

 지난 1970년대 오일쇼크는 비록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줬지만 적지 않은 긍정적 효과도 낳았다. 바로 세계 각국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대체에너지를 찾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한 것이다. 그만큼 유가상승의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을 키운 것이다. 세계는 두 차례의 오일쇼크도 이겨냈다. 또 이번 유가상승이 급작스럽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국제유가는 여전히 2008년의 최고치인 배럴당 147달러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새삼스럽게 제3의 오일쇼크니 해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리비아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어차피 유가는 당분간 더 오르면 올랐지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고유가 체제에 적응할 수 있는 긴 안목의 대책이 절실하다. 사실 에너지효율의 향상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은 최근 이명박 정부가 간판사업으로 내세우는 이른바 ‘녹색성장’ 정책과 거의 일치하지 않는가. 유가상승이 당장은 고통스럽지만 세계적인 에너지 소비구조의 전환을 앞당기고 녹색기술을 발전시킬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카다피의 몰락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뜻밖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김종수 논설위원·경제부문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