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KTX 사고, 호미 대신 가래로 막을 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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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KTX는 최고 시속 305㎞로 운행한다. 한 번에 900여 명을 싣고 서울~부산 423.8㎞ 구간을 2시간18분 만에 주파한다. 빠르고 편한 만큼 위험성도 비례한다. 아주 사소한 실수나 결함만 생겨도 탈선·충돌 등 엄청난 재앙(災殃)을 부를 수 있다. 그 어두운 가능성의 단적인 예를 보여준 게 지난 11일 광명역 인근 터널에서 발생한 KTX 열차 탈선사고였다.

 광명역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KTX 사고가 또 났다. 어제 오전 KTX 열차가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부근에서 40분간 멈춰 섰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코레일은 사고 열차의 자동화된 열감지장치 센서가 작동해 멈춰 선 것이라고 해명했다. 열감지장치가 왜 작동했는지 등 정확한 원인은 모호하다. 코레일은 광명역 사고 때 너트 하나 때문에 일어났다고 발표한 뒤 각종 의문을 덮어버렸다. 이번에도 ‘단순 오작동’이라며 대충 넘어가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불안정한 시스템에서 빚어지는 잇단 사고에 시민들은 불안하다. 1998년 승객 101명이 사망한 독일 고속열차 이체(ICE)의 탈선사고는 차륜을 고정하는 링 하나가 파손된 것이 원인이었다. 그동안 외국에서 터진 고속열차 참사는 점검만 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가 대부분이었다.

 KTX가 2004년 이후 본격적인 운행을 시작한 지 7년이 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다섯 번째 고속철 건설, 네 번째 고속열차 개발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해외 수주사업에 참여할 기술력도 인정받고 있다. 45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건설 사업(1100㎞), 200억 달러에 이르는 브라질의 고속철도 사업(510㎞)이 기다리고 있다. 고속철 종주국인 프랑스·독일·일본에 이어 중국까지 가세하면서 수주 경쟁은 치열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숨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어떤 기술이든 시행착오란 있게 마련이다. 작은 사고라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자세가 필요하다. 스스로 안전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있어야 외국에도 우리 기술을 당당히 내놓을 수 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