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택답다 ‘1무대 2편 공연’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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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윤택 감독이 24일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배우들을 지도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어금니 꽉 물고 말하면 안 돼. 시선은 관객을 향해 멀리 던지고 눈으로 말하라구.”

 24일 오후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가마골 소극장.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인의 한 사람인 이윤택(59·영산대 연기뮤지컬 학과 교수) 감독이 1시간 뒤 공연될 작품 ‘크리스마스에 30만원을 만날 확률’의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었다.

 가마골 소극장이 기획한 ‘젊은 극작가전’은 다음달 6일까지 모두 6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들은 이 감독이 2년 전 낙동강 끝자락인 경남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에 조성한 ‘도요예술공동체’에서 제작됐다. 그는 2년간 김해시의 지원을 받아 마을 조성을 마친 뒤 1, 2월 두 달 간 배우들과 숙식을 하면서 마무리 작업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문화 게릴라’라는 그의 별명답게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모든 연극은 1회 공연에 연극 2편을 관람할 수 있는 ‘2편 동시 공연’이다. 영화를 2편 상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연극을 2편 공연하기는 이례적이다. 1편당 공연시간이 50분쯤 되는 단만극 2편을 잇따라 공연하는 것이다. 지겨움을 싫어하는 요즈음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다. 관객들은 “단막극은 극적 긴장감이 높고 깔끔한 맛이 매력이다. 장막극 위주로 공연돼 온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가을비’는 국적이 없는 다문화연극이다. 한국인이 희곡(정소정)과 연출(김세일)을 맡았지만 모두 일본 배우들이 출연한다. 일본어 대사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무대 위쪽에 자막이 뜬다. 가족 해체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은 우울하고 섬뜩한 풍경을 사진을 찍듯 보여주는 연출기법을 활용한 일본풍이다.

 ‘설명이 있는 연극’으로 진행되는 것도 독특하다.

 이 감독은 연극 공연 전후에 관객들 앞에 선다. 막이 오르기 전에 관객들 앞에서 작품특성을 설명하고 제작과정의 뒷얘기를 들려준다. 23일 첫 공연에는 극작가 차근호(38)씨 등을 초청하는 등 배우와 제작진을 관객에게 소개했다.

 연극이 끝난 뒤에는 관객들과 걸죽한 토론을 벌였다.

 그는 “살아 있는 증거로 ‘X대가리’를 흔들고 똥밭에 굴러도 이승은 좋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가을비’는 충격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객으로 온 이성규(61) 부두극단 대표는 “가족문제를 다루는 2편의 연극을 보면서 조금씩 비겁하게 사는 나의 잘못을 들킨 것 같았다. 일본 연극의 분위기를 강하게 받았다”라고 평했다.

 ‘가을비’ 등 4편이 무대에 오르는 젊은 극작가전은 26일, ‘하녀들’은 28∼3월 3일, ‘햄릿머신’은 다음달 4~6일 공연 된다. 문의 1588-9155.

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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