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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해 떨어지면 뜨거워지는 미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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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만 못하다 해도 미사리는 여전히 라이브 카페의 메카다. 중년들에게 이곳은 젊은 시절의 향수가 숨쉬는 곳이고, 요즘 청년들에게도 여러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해외에 사는 동포들도 하남은 몰라도 미사리는 안다는 얘기가 있다. 미사리에서 만난 주부 지석순(54)씨는 “외국 사는 친척들을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도 나중에 기억에 남는 곳은 꼭 미사리”라고 말했다.

미사리에는 해질녘부터 가수 명단이 적힌 현수막이 가로등마다 걸린다. 이르면 오후 1시, 늦어도 오후7시부터 라이브 공연이 시작된다. 자정 무렵 분위기가 가장 고조된다. 밖에서 볼 때는 알기 힘들지만 안의 열기는 상상 이상이다. 인기 가수가 몰리는 주말에는 자리 잡기도 힘들다. 열정 가득한 미사리 카페 속으로 들어가봤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1 라이브 카페 ‘열애’에서 윤시내씨가 열창하고 있다. 자정에 가까워지면서 무대는 달아오르고 객석의 열기도 뜨거워진다. 2 라이브카페 ‘열애’. 3 통나무집을 연상케 하는 ‘벤허’. 4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아테네’. 5 엉클톰의 출연 가수들이 적힌 현수막. ‘아테네’와 ‘엉클톰’은 보금자리주택이 들어설 예정인 미사지구에 속해 있어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6 중년과 젊은이가 모두 찾는 라이브카페 ‘로마’

카페 가수, 주부들 위해 최신 노래도 섭렵해야

한때 미사리에서는 가게 이름 앞에 메인 가수의 이름을 붙이는 게 유행했다. ‘이종환의 ‘쉘부르’ ‘이치현의 싼타나’ 등이다. 지금은 유일하게 남은 곳이 바로 ‘윤시내의 열애’다. 윤시내씨는 목요일과 토요일 오후 10시 이곳 무대에 선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자 객석을 메운 중년들의 시선이 한데 고정됐다. 힘차면서도 날카롭고, 끝이 자유자재로 휘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관객이 빨려들었다.

 객석에서는 그녀의 히트곡인 ‘열애’를 불러달라는 신청이 이어졌다. 그녀는 “열애에 앞서 TBC에서 마지막으로 여자가수 부문 대상을 받았던 ‘고목’을 불러드리겠다”며 ‘몬테카를로의 추억’까지 세 곡을 연달아 불렀다. 40분간의 공연이 끝나고 윤씨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노래에 흠뻑 빠졌던 중년들은 환호로 답했다. 10년 동안 미사리에서 윤씨의 공연을 봐왔다는 신제선(60)씨는 “미사리 카페들이 대부분 사라졌다지만, 열애는 남아 있어 다행”이라며 “집이 일산이라 이곳까지 한 시간쯤 걸리지만 한 달에 세 번은 노래를 들으러 온다”고 말했다.

 미사리의 카페들은 각각 내세우는 대표 가수가 있다. 이들이 공연하는 날짜를 골라 일부러 찾아오는 중년 손님이 많다. 열애 오균아 사장은 “이름이 알려진 가수의 경우 한 군데 카페에서만 전속으로 일하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이라며 “그래서 카페가 문을 닫으면 그곳을 주무대로 했던 가수도 설 자리를 잃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했다. ‘세시봉’이 뜨면서 요즘은 그나마 손님이 10~20% 정도 늘었다. 주부 박선희(55)씨는 “요즘은 어디를 가도 중년 여성들이 모이면 세시봉 얘기뿐”이라며 “그 시절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은 아무리 찾아봐도 미사리만 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미사리 차 값은 여전히 높은 편이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음료 가격은 1만7000~2만5000원, 스파게티·스테이크 등 식사류도 2만5000~5만원이다. 메인 가수들이 무대에 서는 주말이면 가격이 더 올라간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관객들은 “디너쇼에 비하면 라이브 콘서트 티켓 값으로는 싼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보통 오후 9시 이전에 공연하는 이들은 ‘언더그라운드’로 불리는 무명가수들이다. 이들에게 미사리는 꼭 서고 싶은 꿈의 무대다. 이들끼리의 경쟁도 치열하다. 중년이 주요 타깃인 카페의 경우 무명가수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최신 인기곡을 섭렵하는 것. 주부 고미도(53)씨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부른 ‘그 남자’나 제빵왕 김탁구 중 이승철의 ‘그 사람’을 주로 신청한다”며 “이곳에 나오는 가수들은 요즘 유행하는 노래는 대부분 소화해낸다”고 말했다.

입담 겸비해야 젊은 층 사랑받아

오후 11시 남성 4인조 ‘어바닉’이 라이브 카페 ‘엉클톰’ 무대에 섰다. 노래가 끝난 뒤 한 멤버가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예전에 삭발을 하고 다닌 적이 있는데, 회색 후드티를 입고 나갔어요. 한 할머니가 저를 스님으로 착각하고 갑자기 합장하시는 거예요.”

 라이브 카페 엉클톰에서 활동하는 남성 4인조 ‘어바닉’은 노래 사이에 우스운 이야기를 곁들였다. 젊은 여성들이 대다수인 관객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엉클톰·아테네 등 젊은이들이 드나드는 카페의 분위기는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홍대나 강남의 클럽과는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테이블에는 술병 대신 커피·칵테일이 대다수이고 춤을 추기 위한 스테이지는 없다. 사적인 이야기는 자제하고 라이브 위주로 승부하는 중년 카페의 가수들과 달리 이곳은 재치 있는 입담과 댄스 등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췄다. 아테네에 출연하는 남성 2인조 ‘프로 스펙스’는 “젊은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서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가수라기보다 종합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가수와 댄서가 팀을 꾸려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미사리에서 이를 가장 먼저 선보인 건 가수 ‘춘자’다. 춘자는 이미 7~8년 전부터 카리스마가 넘치는 몸동작과 남자처럼 거친 입담으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매니저 이은성(35)씨는 “미사리는 윤시내·박강성처럼 가창력으로만 승부하는 가수와 춘자처럼 가창력에 입담을 섞어 관객을 사로잡는 가수로 나뉜다”며 “젊은 층은 춘자 스타일의 가수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도권 하루여행에 딱이죠
매운탕 맛은 또 어떻고요

미사대교 부근 나무고아원.

미사리는 팔당댐이 들어서기 전 매년 물난리가 났던 동네다. 지금은 댐과 둑이 물을 막아서고는 있지만, 아직도 굽이치는 한강의 물줄기가 이곳의 자연환경을 지배한다. 인근에는 볼 만한 생태관광거리가 꽤 있다.

 미사대교 서쪽 선동나들목 근처를 흐르는 한강 물줄기 위로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구간이 있다. 선동둔치라 하는데 매년 4월이면 잉어 떼가 모여 펄떡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산란기를 맞은 잉어 암컷·수컷들이 뒤엉킨다.

 여름철에는 나무고아원이 볼 만하다. 미사로에서 미사대교로 가는 길목에 있다. 성장이 더디거나 갈 곳 없는 나무들을 심어놨는데, 나무 군락 앞에 세워놓은 푯말에 쓰인 사연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떤 나무는 군부대에 있었는데 옮겨오는 과정에서 관계기관에 보고가 잘 안 돼 작업하던 사람이 군 감찰기관에 불려가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이 불어나는 7월부터는 팔당댐 방류도 구경거리다.

 가을에는 경정장 동쪽 끝에 펼쳐진 억새밭이 장관이다. 서울로 들어오는 물줄기가 크게 휘어지면서 비옥한 흙이 쌓였고, 그 위에 억새가 자리를 잡았다.

 미사리에서 먹을거리는 단연 매운탕이다. 카페가 들어서기 전 미사리에는 횟집·매운탕집이 줄지어 있었다. 그러다 1999년 한강수계법이 시행돼 한강에서의 어로행위가 금지되자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역사가 오랜 매운탕집들이 미사리 아래쪽 동네에 모여 있다. 맛이 좋기로 유명한 집은 ‘털보집(031-792-3815)’과 ‘잉어집(031-792-2189)’. 털보집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30분~오후 9시30분, 잉어집은 오전 11시~오후 10시. 두 집 모두 잡어탕이 2인분 4만원, 쏘가리탕이 2인분 7만원.

 미사로에서 조정경기장으로 내려가는 길 끝 무렵에 남도한정식집 ‘하얀물결(031-792-3636)’이 있다. 벌교 꼬막, 담양 떡갈비, 영광 굴비 등이 나오는 점심 특선이 1인분에 1만7000원, 무안 뻘낙지, 영광 보리굴비, 간장게장 등으로 차린 남도사계 코스요리가 1인분에 5만8000원. 오전 11시~오후 10시.

이정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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