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그림자’ 트리폴리 … ‘해방의 환희’ 벵가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트리폴리”, “해방의 환희, 벵가지”.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24일자, 가디언의 23일자 르포 기사에서 각각 등장한 표현이다. 트리폴리는 인디펜던트 기자가, 벵가지는 가디언 기자가 현장을 묘사했다.

 리비아 사태가 내전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와 제2도시 벵가지의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수도 트리폴리에는 탈출을 위한 몸부림과 혼돈, 공포가 가득 차 있다. 반면 21일(현지시간)부터 시위대가 장악한 제2도시 벵가지는 42년 통치가 무색할 정도로 무아마르 카다피(Muammar Qaddafi)의 흔적이 지워지고 있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전투기 폭격이 있었다고 알려진 트리폴리는 겉으로 보기엔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비가 내리는 트리폴리 시내 중심 그린광장에는 반정부 시위대가 보이지 않았다. 탱크도, 전투기도, 무장한 군인도 없었으며 산책하는 노인과 여성만 발견됐다. 그러나 트리폴리 외곽에서는 마을 전체가 친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으로 나뉘어 벌인 총격전 등으로 폐허로 변했다. 트리폴리와 그 주변의 휘발유와 식료품 가격은 3배까지 치솟았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트리폴리 국제공항은 리비아에서 탈출하려는 1만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 소변의 악취와 공포가 가득한 아수라장이 됐다. 공항에서 항공편을 기다리며 이틀 이상 굶은 사람들은 경찰에게 뇌물을 주거나 서로 주먹다짐까지 해가며 비행기표를 구하는 데 혈안이 돼있다고 한다.

 하지만 벵가지에서는 2년 전 카다피가 유엔총회에서 한 “나는 아프리카 왕 중의 왕” 연설을 비꼬아 카다피의 얼굴 옆으로 ‘나는 아프리카 원숭이 중의 원숭이’라고 쓰여진 낙서가 거리의 벽에서 발견되는 등 독재자의 몰락을 엿볼 수 있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벵가지 지역의 리비아 군인 중 일부는 반정부 세력에 합류했으며 이전까지 일반인은 접근도 할 수 없었던 군 기지 주변에서 사람들이 차를 몰며 카다피로부터의 해방을 자축했다. 하지만 병원에는 시신과 부상자가 넘쳐나고 지금도 여전히 부상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해방의 환희 속에 상처의 치유가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현지 주민들은 카다피가 수일 내, 혹은 수주 내 물러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민동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