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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패율 위하여” 청와대 만찬 건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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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

20일 청와대 상춘재(常春齋)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단 만찬에서 “석패율을 위하여!”라는 건배사가 나왔다.

 전북 고창 출신 정운천 최고위원의 건배사였다. 이 대통령과 모든 최고위원이 “좋다”고 화답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중앙선관위는 최근 석패율제도 도입의견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제출했다.

▶<본지 2월 19일자 10면>

그 뒤부터 아예 ‘석패율 전도사’로 뛰고 있다. 한국정치에서 ‘석패율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석패율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물꼬는 열어줄 수 있다”(정운천)는 게 많은 이의 생각이다.

 석패율제는 말 그대로 ‘애석하게’ 떨어진 후보를 구제해 주는 제도다. 아깝게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석패율(낙선후보 득표율/당선자 득표율)이 높으면 비례대표로 등원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부산이나 대구에 출마했다가 떨어진 민주당 후보가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다. 광주나 전주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진 한나라당의 경우 호남에는 후보조차 내지 못한 지역이 수두룩했다. 정 최고위원은 “석패율만 도입되면 내년 19대 총선에서 호남의 모든 지역구에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해 표를 얻으려 열심히 뛸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 점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현행 비례대표(54명)의 10~20%를 석패율 후보로 배정하면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민주당은 영남에서 2~5석씩 확보할 수 있다. 물론 각 정당이 각자의 전략에 따라 비례대표 가운데 석패율 후보 배정비율을 40~50%까지 높일 수도 있다. 화끈하게 취약지역을 공략할 수 있는 셈이다.

 이날 청와대 만찬에서 나온 석패율 건배사가 눈길을 끄는 건 그런 석패율제도가 어느 때보다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석패율제 논의는 10년 전부터 있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석패율제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정계개편을 위한 술수”라고 반대해 무산됐다. 그런데 지금은 모처럼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23일 국회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된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 내정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석패율은 우리 정치 현실의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 석패율제 도입을 주장했던 민주당은 긍정적이다. 석패율제를 반대하던 여권의 입장이 다행히도 바뀌었다. 꼭 10년 만에 여야의 목소리가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석패율제 도입을 위하여!”란 청와대 만찬 건배사가 그래서 반갑다.

정효식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