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10]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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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을 전후한 공산권의 붕괴는 20세기의 마지막 대사건이다. 2차대전 종전 후 반세기 가까이 세계의 역학구조를 결정해 온 냉전의 틀이 갑자기 무너져버린 이 사건은 모든 사람의 의식에 충격과 혼란을 가져왔다.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지 분분한 의논이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유일한 경쟁자를 물리친 자본주의 가치관이 유일한 가치관으로 군림하며 인류의 의식을 통일해 버리면 상이한 가치관 사이의 갈등에 의해 전개되는 ‘역사’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역사 없는 세상, 즉 완성된 세상의 인간은 이념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고 그는 전망한다.

한편에는 동서간의 대립이 남북간의 대립으로 대치되면서 2원적 세계구조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제3세계의 성장은 냉전의 소멸에도 중요한 작용을 했으며, 인류 문명의 본성이 1극체제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패자(覇者)
가 있으면 도전자가 나서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제3의 전망으로 다원적 세계구조를 제시한다. 냉전기의 가치관 대립은 경제적 가치에 초점을 모으며 경제외적 가치를 담론의 장외에 묻어 놓고 있었고 경제적 가치관의 통일 이후에는 경제외적 가치의 논의가 떠오르게 되리라는 것이다.

종교적 전통에 근거를 둔 8∼9개 문명권의 자의식이 냉전구조의 속박에서 풀려나오면서 정체성의 확립과 확장을 위한 투쟁에 나서게 되고 이 투쟁이 새로운 세계구조의 중심축을 이루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헌팅턴의 전망은 실증적 근거가 없는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그러나 세기말적 격동 속에서 인류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각을 넓혀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가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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