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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헐리웃감독 넘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된다? 빈말이 아니다. 인터넷에는 무료 배급사와 극장이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이다. 영화상영권을 사실상 틀어쥔 극장의 횡포를 비껴갈 수 있다. 관람객도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한다. 감히 극장이 따라올 수 없는 초대형 객석과 자유로움을 인터넷이 선사하고 있다.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를인영화제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영화가 최고상을 수상한 것도 이런 인터넷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황금곰상'을 받은 박찬욱ㆍ찬경 감독의 스마트폰 영화 ‘파란만장’이 그것이다. 어디 영화 뿐인가. 미국 경제전문 블룸버그 TV는 변방에 있던 소녀시대가 유튜브를 통해 세계인에게 어필, 한국의 파워브랜드가 됐다고 논평했다. 삼성을 제친 소녀시대의 브랜드 파워는 유튜브라는 네트워크 환경이 만들어준 셈이다.

21일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색다른 시상식이 열렸다. 일반인이 출품한 제1회 ‘올레-롯데시네마 스마트폰 영화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10분 내외의 초단편 영화 470편이 접수됐다. 14살 중학생, 만삭의 주부, 휴학한 대학생, 공익근무요원,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다. 장르도 멜로·액션·공상과학·코믹 등 다양하다.

이날 ‘플래티넘 스마트상(1등)’을 수상한 민병우(30·수원대 연극영화과 3학년 휴학)씨는 스마트폰 1개로 '도둑고양이들'를 찍었다. 러닝타임은 10분이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남성과 도둑고양이가 서로 교감하며 실연의 아픔을 달랜다는 내용이다. 촬영에 든 비용은 스마트폰 받침대와 핸드그립을 사는데 든 10여 만원과 진행비 10만원 등 20여 만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받은 부상은 1000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아이폰4 1대였다. 일반인으론 처음으로 극장에서 시사회를 여는 기회도 얻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이준익 감독은 “정말 아이폰으로 찍은 것이 맞는지 의심했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휴대용 카메라라 손떨림이 심했을텐데 앵글을 안정적으로 잡았고 작은 렌즈 안에 배우의 감정과 표정을 잘 담아냈다”고 말했다.
21일 민씨를 만나 물었다. 스마트폰 영화, 일반인도 쉽게 만들 수 있을까.

-영화 내용을 소개해달라.

“여자친구에게 버림받은 남성이 우연히 집으로 들어온 도둑고양이를 보며 그녀를 회상하는 내용이다. 이 남성은 고양이 ‘나비’에게 많은 정을 쏟았지만 나비는 내키는데로 행동했다. 집을 나가고 싶으면 나갔고,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왔다. 이를 그녀와 오버랩시켜 실연과 이별의 과정으로 그렸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인공 나비는 내가 기르는 동물이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을텐데.

“나는 연출 지망생이다.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고 싶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기존의 방식대로 영화를 찍으려면 최소 스텝만 20명이 넘는다. 장비 산업이기 때문에 작품 하나를 찍을 때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하지만 스마트폰 영화는 다르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찍으면 된다. 기동성과 편의성이 담보된다. 또한 화질도 HD급이라 기존 필름에 크게 뒤쳐지지 않는다. ‘초초초 저예산’의 영화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영화를 찍는데 어떤 장비를 썼나.

“아이폰4 1대와 흔들림을 막아주는 핸드그립, 아이폰을 지탱해주는 받침대 뿐이다. 조명이나 화면 모니터, 링 어댑터, 카메라 렌즈 등은 없었다. 아이폰 전용 촬영 장비는 값이 비싸고 해외 배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내가 직접 장비를 개조해 만들었다. 아이폰 전용 핸드그립은 30만원 가량 한다. 하지만 나는 게임용 그립을 사서 뒤쪽에 구멍을 뚫어 렌즈가 보이도록 했다. 받침대 역시 촬영 전용은 10만원 가량 하는데 나는 네비게이션 거치대에 고무밴드를 고정시켜 만들었다. 고가의 장비가 없어도 필요한 컷을 충분히 찍을 수 있다.”

-그래서 든 총 비용은 얼마인가.

“아이폰을 뺀 촬영 장비 10만원과 진행비로 쓴 10만원 등 총 20만원 정도가 전부다. 촬영은 1주일 동안 진행됐고, 편집하는데 3주가 소요됐다. 남자 주인공과 배경 음악 작곡은 아는 선후배가 무료로 도와줬다. 촬영 장소는 내 집, 집 앞 대문, 대문 앞 골목이었기 때문에 모두 공짜였다.”

-촬영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

“조명이 변수였다. 햇빛, 가로등 불빛, 책상 스탠드를 활용했다. 낮에는 오후 2시가 가장 밝았기 때문에 이를 전후로 2시간 가량을 촬영했다. 밤에는 가로등 불빛의 각도를 재 빛이 가장 몽환적으로 들어오는 위치를 잡았다. 실내에서 촬영할 땐 책상 스탠드를 이리저리 비춰 최적의 환경을 만들었다. 아이폰엔 줌(zoom in, out) 기능이 없어 손으로 당기고 밀며 찍었다.”

-영화는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

“영어 자막을 입혀 유튜브에 올릴 것이다. 재미있고 잘 만들기만 하면 전 세계인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남미 감독은 유튜브에 올린 5분짜리 동영상으로 3000만 달러를 받고 스파이더맨 제작자에 스카웃 돼 헐리우드에 진출했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찍으려는 이용자에게 잘 만드는 팁을 준다면.

“나도 초보여서 조언할 입장은 못된다. 무조건 많이 찍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좋은 주제를 잡더라도 촬영하는 상황에 따라 변수가 생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각도로 찍으면 멋진 화면이 나올지 감이 잡힌다. 이론적으로 배우는 것보다 컷에 대한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 후 무료 음원 사이트를 찾아 영화 분위기에 맞는 곡을 선택해 넣으면 만족스러운 스마트폰 영화가 나올 것이다.”

이지은 기자 jelee@joongang.co.kr

※제1회 ‘올레-롯데시네마 스마트폰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은 이준익 감독이 맡았고, 봉만대·윤종석·임필성·정윤철·정정훈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수상작은 22~27일까지 오후 8시 롯데시네마 건대입구관 아르떼관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선착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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