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윤대현의 ‘마음아 아프지마’

걱정을 왜 붙들어 맵니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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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걱정거리에 사로잡혀 객관적으로 보유한 행복 자산들을 즐기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산다. 내 환자인 김모 사장도 그런 사람이다. 자수성가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도 벌고 사업도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선생님, 남부끄러워서 얘기도 못하겠는데요, 제가 요절할 것 같은 두려움에 괴로워요.” 운동선수처럼 건장한 40대 중반의 쾌남인 그는 ‘건강 걱정’으로 각기 다른 대학병원 검진센터에서 매년 3번이나 검진을 하고 있었다. 결과는 정상. 의사들이 “건강하시니 걱정 말고 마음 편하게 가지시라”고 해도 평안이 오래 가지 않았다. 면담을 해보니 우울증이 동반된 건강염려증이 있었고 상담과 약물치료로 호전돼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이처럼 우 울 증등 정신과 질환은 병적 수준의 걱정거리를 증상으로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걱정거리가 많은 것 자체가 모두 병적인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우리 생각의 70% 정도는 부정적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 생각이 뇌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것 자체는 정상이다. 다만 그 부정적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필자도 얼마 전 그런 경험이 있다. 소변에 왠지 거품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날 따라 “거품이 많으면 단백뇨가 의심된다”는 강의를 듣고 혼자서 진단하고 투석하고 신장 이식까지 하는 걱정을 하면서 이미 환자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 소변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부들부들 떨다가 정상이란 이야기를 듣고는 새 생명이라도 얻은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를 보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은 열등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사실 ‘걱정’은 생존을 위한 진화의 산물이다. 즉,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이 더 진화한 사람이고 생존력이 강한 사람이라 볼 수 있다. 왜냐면 걱정을 하므로 그만큼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걱정 즉, 부정적인 생각 자체는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신호인 것이다. 문제는 그 신호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는 데 있다. 걱정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다.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고, 또 하나는 미래에 대한 염려다. 따라서 걱정에 사로잡히면 현재가 없어지게 된다. 우리가 실제 가치와 행복을 느끼는 것은 현재인데 현재가 없어지니 삶에 문제가 생기고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걱정, 이 양면의 칼날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의지로 찍어 누르는 것이다.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찍어 누를수록 더 커지는 것이 걱정의 특징이다. 통상 의지력이 약한 사람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최근 나온 많은 자기계발서들을 보면 긍정적인 사고를 강조한다. 걱정에 맞서 긍정적인 생각을 내밀어 대항하려 한다.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정적인 생각에 긍정적인 생각을 혼합시켜 뇌를 더 힘들고 복잡하게 할 수 도 있다. 24시간 음울한 음악만 나오는 라디오와 24시간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라디오를 동시에 켜고 듣는다고 생각해보라!

 ‘걱정은 정상이다’는 생각에서 열쇠를 찾아야 한다. 걱정을 만들어내는 자아와 그것을 처리하는 자아를 분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걱정이라는 위험 신호를 실제 현실인양 인식함으로써 빠지는 ‘인지융합’을 극복하고, 거기서 빠져 나와 객관적으로 위험 신호를 인식하는 ‘인지해제’에 이르러야 한다. ‘생각은 생각일 뿐’인 것이다. 그 생각을 억누르지도,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만들려고 하지도 마라. 걱정이 뇌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놓아두라. 인지해제의 한 방법으로 ‘생각아 고맙다’란 게 있다. ‘오늘 암에 대한 걱정이 많이 드네, 생각아 고맙다. 내 건강을 신경 써줘서. 생활 습관도 좋게 바꾸고 정기적으로 건강검진도 할게 너무 마음 쓰지마. 그리고 난 오늘 내게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낼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삶은 바로 이 순간의 현실이니까’라고 되뇌는 것이다. 동요나 가요의 음률에 맞춰 부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성공에 대한 정의를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된다. 흔히 역사 속 위인들은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현실을 희생하며 노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미래만 보는 삶으로는 현실에 대한 만족이 있을 수 없고, 목표 성취에 대한 걱정에 늘 휩싸이기 마련이다. 정신건강 측면에서 성공의 잣대는 ‘오늘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다. 나는 바로 지금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

윤대현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나와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를 맡고 있다. 스트레스 관리 등 비약물적 요법을 통해 건강의 유지를 돕는 ‘라이프 스타일 의학’과 몸과 마음의 관계를 연구하는 ‘정신 신체 의학’이 주된 관심사다. 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과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모임인 한국바그너협회 총무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