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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500호 훌쩍 … 24년째 살림 꾸려온 정진규 주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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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현대시학’이 지난해 11월 500호째를 냈다. 가장 오래된 시 전문 월간지다. 이 땅 시인들의 사랑방이자 공부방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하순엔 조촐한 500호 돌파 기념식도 열었다. 1969년 4월 창간 이래 시쳇말로 한 땀 한 땀 공들이듯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뚜벅뚜벅 제 갈 길을 걸어왔다.

 ‘현대시학 500호’의 중심에는 주간을 맡고 있는 시인 정진규(72·사진)씨가 있다. 정씨는 잡지를 창간한 전봉건(1928∼88) 시인이 세상을 떠난 88년부터 사실상 혼자서 잡지를 만들어왔다. 열악한 재정, 등단 관련 잡음 등 ‘1인 잡지’가 갖는 한계에도 ‘현대시학’이 이만큼이나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정씨의 공이다.

 ‘현대시학’의 위상은 확고하다. 무엇보다 신작 발표 지면이 넓은 게 자랑이다. 웬만한 계간 문예지의 경우 1년에 얼굴을 내미는 시인이 50명 안팎인 데 비해 ‘현대시학’은 한 호에 30명씩 소개한다. 1년이면 300명이 넘는 시인이 지면을 얻는다는 얘기다. 11일 오후 서울 경운동 사무실에서 정씨를 만났다.

-20년 넘게 잡지를 꾸려왔다. 뭐가 가장 힘들었나.

 “역시 재정 문제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기적이다. 한 호당 제작비가 최소한 500만원 정도 든다. 올해부터 발행부수를 줄여 1500∼1700부를 찍는데도 그렇다.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1년에 3600만원 지원을 받지만 사무실 운영비, 인건비까지 따지면 매달 400만∼500만원 정도 적자가 난다. 중·고등학교 선생이었던 아내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지금도 생계비는 퇴직한 아내의 연금으로 충당한다. 원고료나 강연 수입, 상금 등 내 수입은 몽땅 잡지 운영에 들어간다.”

-가장 보람된 일은.

 “좋은 시인을 배출했을 때가 아닌가 한다. 시인 조정권·최승호·최정례·이덕규, 시조시인 박시교·김영재 등이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배출한 시인 전체는 200명쯤 된다. 기획특집이 좋은 평가를 받을 때도 보람을 느낀다. 한양대 정민 교수의 『한시미학산책』도 ‘현대시학’에 연재됐던 것이다. 한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본다. 작고한 오규원 시인이 연재했던 시 창작법도 반응이 뜨거웠었다.”

-시인 개인으로선 어떤가.

 “아직까지 내 시가 늙지 않았다, 긴장과 탄력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잡지를 만들며 젊은 시인의 시를 꾸준히 따라 읽어서 그런 것 같다.”

-계획이 있다면.

 “과거에는 시대적인 문제 때문에 시적 입장이 다른 시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게 없는데도 젊은 시인들과 나이 든 시인 사이에 단절이 심각한 것 같다. 시인들이 다양한 형태의 감동에 개방적이었으면 한다. 시인들의 상호 소통에 ‘현대시학’을 활용하겠다.”

-올해를 ‘500호 기념의 해’로 정했는데.

 “전봉건 선생 시비를 세우고, 잡지 전권의 데이터베이스(DB) 작업도 추진한다. 역시 예산이 문제다. 시 잡지는 특히 돈이 되지 않는 만큼 정부가 지원할 때 종합문예지와 차등을 두었으면 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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