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못 구해 결혼 미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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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기자] 장밋빛 미래를 꿈꿔야 할 신혼부부들이 전세난에 울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본격화한 전세난은 전세난민까지 만들며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특히 대부분 사회 초년생인 데다 결혼 준비로 자금 여유가 없는 신혼부부들은 더 힘들다.

서울 한남동 삼성래미안공인 관계자는 “우리 사무실에만 신혼부부 10쌍의 대기수요가 있다”며 “대부분 결혼 성수기라는 3월부터 결혼식을 한다는 데 집을 못 구해 안절부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혼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 결혼식을 연기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3월 초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현모(31)씨와 4월 말 결혼하는 박모(33)씨의 사연을 들어봤다.

결혼식만 올리고 어떻게 사나

“결혼식을 미뤄야 할 것 같아요. 식만 올리면 뭘 합니까. 살 곳이 없는데…”

3월 초 결혼하는 현모씨는 요즘 식욕이 뚝 떨어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신혼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지금까지도 못 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신혼집은 결혼식 두 세달 전부터 구하면 된다는 게 선배들의 조언이었지만 평소 계획적인 성격의 현씨는 5개월전부터 전셋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연일 전셋값이 오른다는 언론 보도도 신경이 쓰였다.

현씨가 신혼집을 구하기 위해 준비한 자금은 1억5000만원. 대출을 조금 보태 66㎡형 아파트를 구하려고 했다. 현씨는 “결혼 후 바로 아이를 가질 계획이라 육아를 도와주실 처갓집이 있는 강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신혼집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억 이하에는 전세물건이 없었고 대부분 월세를 내야 하는 반전세로 나왔다. 현씨는 “중개업소에서 이사철이라 전세수요가 많을 때니 조금 기다렸다가 전셋값이 조금 떨어지면 계약하라고 해서 기다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세물건은 더 귀해졌고 전셋값도 더 올랐다. 현씨가 눈여겨봐뒀던 서초구 잠원동의 입주 30년차 아파트 59㎡형 전셋값은 지난해 10월 1억8000만원에서 현재 2억5000만원이 됐다. 현씨는 “전세자금대출을 최대한 받고 회사에서 추가 대출까지 받았지만 전셋값이 모자란다”고 하소연했다.

광진구, 성동구 등지까지 지역을 넓혔지만 마땅한 집을 찾지 못했다. 결국 현씨는 결혼식을 미루기로 했다. 이미 웨딩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새 가구와 가전제품도 봐뒀지만 신혼집을 구할 방법이 없어서다.

현씨는 “예식장 계약금 50만원을 날리고 결혼식 날짜를 미루는 것 외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정부에서 전월세 대책을 추가로 내놓는다고 했으니 당분간 결혼은 미뤄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식만 올리고 따로 살고…

4월 말 결혼식을 올리는 박모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박씨와 예비신부의 직장이 광화문에 있어 서대문‧마포구 일대 66㎡대 아파트 전세를 알아봤다. 박씨는 “서대문구는 신혼집으로 살 만한 깨끗한 아파트가 거의 없고 마포구는 2억원 이하에는 쓸 만한 전세물건을 찾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파트 전세를 포기하고 오피스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집 크기가 더 작아지더라도 입주한지 오래되지 않은 새 오피스텔이 신혼집으로 낫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전세물건이 아예 없다.

월세는 70㎡형의 경우 보통 보증금 1000만원에 월 100만원이 넘었다. 박씨는 “70㎡이라고 해도 전용면적을 따지면 38㎡밖에 안돼 비좁은 데다 월 수입에서 100만원을 내고 나면 저금을 할 수가 없으니 2년 후에도 계속 월세를 살아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값이 더 싼 다세대를 찾아봤지만 열악한 주거환경에 결국 신혼집 찾기를 포기한 상황이다. 박씨는 “아직 결혼식까지 두달 정도 남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마땅한 수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고 푸념했다.

결혼식을 미룰 수는 없다는 생각에 박씨는 결혼식을 올린 후에도 당분간 각자 부모의 집에서 살기로 했다.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된 셈이다.

박씨는 “취업한 후 결혼을 위해 열심히 저금을 해왔는데 능력에 부족해 신혼집도 못 구하는 것 같아 신부는 물론이고 장인·장모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본다”며 “신혼생활의 단꿈에 젖어 즐겁게 신혼살림을 장만해야 할 시기에 이런 고통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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