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베짱이가 개미에게 큰소리 쳐서 되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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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베짱이가 개미의 집 앞에서 ‘정당한 자기 몫’을 내놓으라고 외치고, 개미는 구걸 온 베짱이를 매몰차게 내몰아 얼어죽게 만든다면 얼마나 어이없고 살벌한가?”

 10일 중앙대 법학관에서 열린 ‘2011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제학이 보는 ‘공정’의 개념을 이솝우화에 비유해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우화 속의 개미는 열심히 일하였고 그 결과 땀 흘려 일한 만큼 거두었다. 베짱이는 판판이 놀았는데 그의 궁핍도 ‘일한 만큼 거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각자의 정당한 몫은 ‘일한 만큼 거둔 몫’일까? 아니면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몫’일까? 베짱이의 정당한 몫은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한 대가로 굶주리는 것일까, 아니면 춥고 배고픔은 면할 정도로 누리는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베짱이를 도와주는 것은 개미의 의무일까, 아니면 배려일까?”

 이 교수는 “경제적 공정성은 결국 소득 분배의 문제”라고 했다. 각자 받아야 마땅한 만큼 받는 분배적 정의가 공정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분배적 정의는 사람들이 각자 ‘정당한 자기 몫을 누려야’ 하고 누구나 ‘인간다운 삶에 필요한 몫은 누려야’ 한다는 두 원칙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사회복지 혜택의 수혜자가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몫’을 고마운 배려가 아니라 자신의 당당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복지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배려하는 따뜻함이 없이 ‘정당한 자기 몫’을 부당하게 빼앗긴다고 분개하는 사회는 인간다운 사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베짱이가 개미 집 앞에서 제 몫을 내놓으라고 목청을 높여서도 안 되고 개미는 구걸 온 베짱이를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시장이 결정해주는 ‘정당한 자기 몫’은 경쟁 실패자와 재난 피해자,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에 냉혈적이지만 이것을 불공정하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며 “그렇더라도 시장경제의 공정한 소득분배가 돌보지 못하는 음지의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회복지는 인간다운 사회의 필수 요건”이라고 결론을 냈다. “바람직한 사회의 덕목은 추상같은 정의만이 아니라 따뜻한 배려가 함께 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을 대신하여 이 배려를 시행하는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계에 대해선 대기업의 정당한 시장력 행사는 보장하되 부당한 남용은 막는 특단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한 가지 방안은 대기업이 시장력을 남용할 경우 피해 중소기업이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하면 중소기업이 납품사업을 접어도 좋을 정도의 배상을 얻어낼 수 있는 징벌적 배상금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렇게 하면 대기업은 횡포를 거둘 수밖에 없으므로 징벌적 배상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하도급 기업들의 소송 남발 등 부작용은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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