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Tokyo 공략에 나서보자!

중앙일보

입력

며칠 전에 후지TV-산케이 신문계열의 기획자를 만났다. 만나자마자 그는 용건부터 얘기했다. 예의바른 일본인들이 이렇게 시작할 땐 상당히 급한 건이란 의미다. “Tokyo Walker 아시죠?” “물론입니다.” 참고로 ‘Tokyo Walker’는 일본 주간지 중에 부수가 가장 많은 잡지다. 1백만부대인 거다. 1주일간 뭘 먹고, 어디서 데이트를 하고, 어디서 뭘 사야 친구들이 부러워하는지를 샅샅이 주간 단위로 보여주는 잡지다.
한마디로 놀고 먹고 사는데 도움을 주는 잡지이다. 워낙 기사 다루는 의도나 기획력이 뛰어나 다른 잡지들이 따라잡지 못한다. 일본의 놀고 먹는 문화 잡지의 항해도는 ‘Tokyo Walker’다. 워낙 히트하니깐 작년엔 요코하마 지역을 독립시켜 ‘Yokohama Walker’를 만들었는데 30만부 판매로 성공했다. 이어 ‘지바 워커’(우리말로 표현하면 ‘경기도 Walker’)
까지 성공시켰다.

후지TV의 기획자가 날 만난 것은 바로 이 다음 얘기인데 신바람이 난 ‘Tokyo Walker’가 혹시 하면서 갑자기 해외로 눈을 돌려 올해 ‘타이베이 Walker’를 만들었단다. 이것이 대성공, 회사 이익을 올리고 있단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 굴지의 잡지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태까지 전자·기계로 해외를 공략해 왔지만 잡지·출판 분야엔 신경을 덜 썼던 것. 물론 만화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곤 있지만 이건 자체 시장에서 성공하다 보니 그 우수한 작품이 외국인 입맛에 맞아 수출되는 것이고 ‘타이베이 Walker’식으로 외국인 공략을 노린 것은 아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해외에서 가장 큰 시장은 서울입니다”라고 했다. 타이베이는 라이벌 회사가 이미 건드렸으니 서울은 자기들이 진출하겠단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타이베이 Walker’의 경우 일본인이 자체 법인을 만들고 자기들만의 노하우(Tokyo Walker식)
를 그대로 적용해 성공시킨 경우다. 중국돈을 일본인들이 고스란히 가져오고 있다는 얘기다.

이 잡지는 단 3명의 일본인들이 만든다. 뒷얘기는 안해도 충분히 상상이 가시리라. 일본인이 직영체제로 3명만 와서 현지법인을 만들어 자기들의 노하우로 만들면 한국돈을 그대로 쓸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후지TV계열사는 ‘타이베이 Walker’와는 달리 한국에서 파트너를 찾아 서울과 도쿄에서 같이 팔리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거다. 한국은 한국판으로, 일본은 일본판으로. 양쪽이 판권을 나누되 투자와 취재는 공동으로 하는 식이다.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은 ‘NONNO’라는 잡지는 한국판으로 만들지 않아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리고 있다. 워낙 디자인과 사진이 뛰어나고, 편집기획력과 아이템이 쌈박하니깐 일본말을 몰라도 그냥 사본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시라. 만약 NONNO가 ‘Seoul NONNO’라는 타이틀로 한국판을 만들어 자기들의 노하우를 발휘해 직영으로 판다면? 이럴 경우 인쇄비와 종이값이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싼 만큼(2분의 1 이하)
책가격이 2천원대로 내려가(일본 소매가는 5천원이다)
, 현재 팔려 나가는 부수에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 최고 판매 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린 일본인들이 뛸 동안 주머니에 손 넣고 있느냐”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Made in Japan’ 선호감각이다. 애국으로 잡지 보는 게 아니다. 사진, 디자인, 기획력이 뛰어나면 일본이고 한국이고를 가리지 않는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있다고 해도 손가락 빨고 있어야 될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이 칼럼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거다. 일본인들이 이런 식으로 기획할 때 우리는 왜 Tokyo를 공략할 생각을 못하는가. 불과 한 시간 반만 물 건너가면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 물가의 몇배다. 최소 2배에서 많게는 10배까지 비싼 게 일본 물가다. 잘만 연구하면 이런 물가구조의 구멍을 뚫으면 오히려 우리쪽에서 Tokyo를 공략할 아이템들이 쏟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아이템들은 누가 가르쳐 줄 순 없다. 자기가 직접 부닥치며 느껴봐야 한다. 감이 올 때까지 살아 보는 것이 가장 좋고, 그것이 만약 불가능하다면, 일본에 가더라도 남들처럼 한 번 스쳐지나가듯 보고 오지 말고 철저히 작전(돈이 보이는)
을 사전에 짜야 한다.

일본에서 살아 보건 일본 여행을 가건 여러분이 그 전에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것은 이규형의 이 칼럼이다.
왜냐구요? 이규형 이상으로 친절한 일본 선생을 찾으실 수 있으시겠어요?

이코노미스트(http://economist.joongang.co.kr) 제 512호 199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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