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했더니 대학자율화 되레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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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대학 자율화 확대를 위해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오히려 대학 자율을 침해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불만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입학사정관제 우수·선도 대학으로 선정된 9개 주요 대학 입학처장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입학사정관제 성과분석 모델 개발 및 운영보완 방안 탐색’ 보고서에서 드러났다. 9개 대학은 경희대·고려대·광주교대·부산대·서강대·이화여대·전남대·중앙대·충남대 등이다.

 7일 공개된 보고서에서 입학처장들은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대학 자율화가 침해됐다”고 입을 모았다. 다양한 인재 선발을 위해 도입한다는 제도 자체에는 긍정적 입장이었지만 ‘장기 로드맵 부재’와 ‘관리체계 미비’ ‘지나친 전형 다양화’ 등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2011학년도 입시에서 전체 모집정원(3772명)의 28.4%(1070명)를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한 고려대 측은 “대학별로 학생을 뽑으라 해놓고 왜 그리 기준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교과외 활동과 창의재량 활동 등 전부 국가가 나서 기준을 만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입학사정관 전형 모집 비율을 2011학년도 15.7%에서 2012학년도 18%로 늘릴 계획인 서강대 측도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해 대학의 자율적 권한이 전혀 없다”며 “대학 자율화라는 큰 방향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남대 역시 “대학 자율화를 추구하면서 지나치게 정부 방침에 따르라는 논리는 모순”이라고 강조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입학사정관제 운영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서강대 측은 “자율적 협의 기구인 대교협이 감독하는 교과부의 대리 기관이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도 “대학이 낸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대교협이 결론을 낸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경우가 있다”고 꼬집었다. 광주교대 측은 “장기 정책을 수립해 재정지원을 해야 하는데 당장 내년도 예산 편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안하다”고 지적했다.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고려대는 “전형이 지나치게 많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 학생과 대학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부산대는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학생을 뽑기만 하고 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선발 이후 진로지도와 부족한 학력 보충 등 보완교육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한국교육개발원 대입제도연구실 김미란 연구위원은 “자율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통제를 가하는 것이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입학사정관 전형이 대학 홍보 수단으로만 활용되는 측면도 있어 대학이 자율화만 요구할 게 아니라 교육 수준을 높이려는 자구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교과부는 입학사정관제의 조기 정착을 위해 우수·선도 대학 등 총 60곳에 350억원을 지원했다. 2011학년도에는 전국 118개 대학에서 3만6896명(전체 정원의 9.6%)이 입학사정관제로 선발됐고 2012학년도에는 122개 대학, 4만1250명(10.8%)으로 확대된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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