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거래제] 경제단체들 “2년 이상 늦춰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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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정부가 2013년에 시행하려던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대폭 손질하기로 했다. 배출권 거래제란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기업들에 ‘배출권’이란 것을 강제로 사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이 제도의 시행 시기를 미루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또 배출권 의무 구입량을 줄여주는 등 기업들의 부담을 더는 쪽으로 관련 법안을 수정할 방침이다.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질까 봐 미국·일본도 하지 않는 것을 왜 우리가 서두르느냐”는 산업계의 반발을 수용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7일 정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산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적절한 시점에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배출권 거래제를) 국제 동향과 산업 경쟁력을 감안해 유연하게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2013년 시행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 입장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국제 동향을 봐서 시작한다는 것”이라며 “산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법안을 고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녹색성장위는 ‘배출권 거래제를 2013년에 시행한다’는 내용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온실가스를 이산화탄소(CO2)로 따져 한 해 2만5000t 이상 뿜는 468개 업체가 대상이다.

그러나 이는 당장 산업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경제단체들은 “산업 경쟁력을 깎아먹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배출권 구입 부담이 없는 일본·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논리였다.

배출권 거래제가 전면 시행되면 현재 연간 이산화탄소 6300만t에 해당하는 온실가스를 뿜는 포스코는 배출권 구입에만 한 해 2조원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할 판이다. 또 제조업체 전체로는 한 해 5조6000억~14조원을 배출권 구입에 써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 흐름도 바뀌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친기업적인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민주당이 주창했던 거래제 도입이 흐지부지됐다. 일본은 지난해 12월 28일 각료회의에서 올해 시행하려던 계획을 무기한 연기했다.

 대한상의 이동근 상근부회장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남들(미국·일본 등)은 안하는데 우리만 하는 것은 자승자박”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배출권 구입의 영향으로 철강값이 오르면 자동차 등의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다”며 “기업들이 부담이 없는 나라로 공장을 옮기고 외국인투자자도 발길을 돌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상의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8개 경제단체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아 설 연휴 직전 국무총리실에 “배출권 거래제는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 동향을 살펴 2015년 이후 논의해야 한다”는 건의서를 냈다. 도입을 2년 이상 늦춰야 한다는 요지다.

 정부는 9일 김황식 국무총리 주재로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수정안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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