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날다〉민병훈 감독과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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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베〉의 감독 모센 마흐말바프가 작년에 부산을 방문했을 때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그치지않았던 낯선 신예 민병훈 감독의 〈벌이 날다〉가 드디어 우리 관객들의 곁으로 찾아온다. 12월 24일 동숭아트센터에서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벌이 날다〉의 1차 시사회에 참가하여 그 작품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리소문없이 상영된 이 소박한 모노크롬 영화는 1년이 지난 사이에 세계 영화계에서 무수히 많은 주목을 받으며 영화광들에게 필견의 영화로 떠오르고 있다.

마치 키아로스타미의 스타일을 떠오르게 만드는 〈벌이 날다〉는 영화가 여전히 인간의 삶과 예술을 담아내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제작비에 허덕이며 타협점을 모색하는 많은 젊은 감독들에게 대안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이 영화를 통해서 주목해야할 이름은 단연 신예 민병훈 감독이다. 제작, 감독, 각색, 촬영, 조명의 1인 5역을 담당하는 세심함과 작은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포장해내는 마법사의 눈을 가진 민병훈이야말로 우리 영화가 발견해야할 주옥같은 존재라는 것을 〈벌이 날다〉는 입증하고 있다. 분명 <벌이 날다>의 스타일은 키아로스타미를 떠오르게 하지만, 민병훈은 키아로스타미로에게 받은 영향으로부터 한발짝 더 나아가 소박함의 극치와 마술적 리얼리즘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가 확장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다층적인 이미지의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열린 구조와 욕심부리지 않고 상황을 이야기하는 안정성, 살아숨쉬는 리얼리티의 확보는 신인감독의 시각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원숙하다. 이처럼 원숙한 시각의 너비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면서 우화집을 읽었을 때의 기분좋은 느낌마저 선사한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토리노영화제, 테살로니카영화제를 거쳐 이제서야 관객과 만나는 〈벌이 날다〉를 통해 민병훈의 삶에 대한 따스한 시각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큰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17일 동숭씨네마텍에서 열린 첫 일반 시사회에는 많은 관객이 몰렸고, 영화가 끝난 후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또한 소박한 감동을 전해받았기 때문인지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도 열띤 질문이 이어졌다.

다음은 민병훈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내용이다.

Q. 왜 제목이 '벌이 날다'인가?

A. 작은 미생물이라도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줄 수 있고, 사소한 것을 통해서라도 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행복한 것이다. 조그만 사람이 항변할 수 있는 의미로 이러한 제목을 붙였다.

Q. 왜 로케이션을 택했나?

A. 이 이야기는 타지키스탄에서 찍어야만 했다. 타지키스탄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이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해낼 수 없었다. 비록 그 곳은 내전중이었지만 많은 보람이 있었다. 어렵게 촬영한 만큼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Q.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게 영향을 받았는가?

A. 타르코프스키나 키에슬로프스키를 좋아했지만, 철학적인 세계관을 영상에 투영시키는 것은 버거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면서 알 수 없는 감동에 사로잡혔다. 영화를 저렇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보다는 우화에 끌리는 것도 키아로스타미를 좋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Q. 이란의 거장 모센 마흐말바프에 의해 세계무대에 알려지게 되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어떻게 마흐말바프를 만나게 되었는가?

A. 타지키스탄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때 또다른 감독이 같은 곳에서 영화를 찍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후 부산에서 마흐말바프를 만나면서 타지키스탄에서 영화를 찍을 당시 서로를 궁금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산에서 〈벌이 날다〉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비록 관객은 15명에 불과했지만, 마흐말바프가 직접 이 영화를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를 만난 것은 나에겐 행운이었다.

Q. 배우들이 모두 아마추어인가?

A. 주인공과 부잣집 사람 역의 배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네 사람들을 캐스팅했다.

Q. 국내에서 영화를 만들 계획은 ?

A.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저예산의 미덕을 고스란히 살린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준비중인 두 번째 영화도 파키스탄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시민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하나의 우화와도 같은 소박한 영화 〈벌이 날다〉의 민병훈 감독은 일상의 공기와 따뜻함을 이끌어내는 보기 드문 눈을 가졌다, 바로 그러한 점이 민병훈을 주목하게 만드는 가장 커다란 이유이다. 민병훈이 들려주는 또다른 우화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크리스마스에 우리를 찾아올 〈벌이 날다〉를 통해 많은 관객들이 우화의 따스함과 인생을 이해하는 달콤한 맛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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