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한한 者, 뻔뻔한 者, 재미있는 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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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호 04면

지난주 미국에서는 바다에 버려진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누군가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변의 모래톱 위에 그랜드피아노 한 대를 가져다 놓았고, 새들이 둥지를 틀면서 마치 예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연출된 것.

김수경의 시시콜콜 미국문화 - 마이애미 해변의 피아노 소동

이는 인근에 살던 한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이달의 독자 사진’ 콘테스트에 응모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도대체 누가 왜 피아노를 가져다 두었는지 각종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드디어 사건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한 부부 감독이 “내가 그 장본인”이라고 언론에 고백한 것.

이 부부는 해변 위에 놓인 피아노가 자신들이 제작하고 있는 영화의 핵심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영화는 세상의 거짓을 파헤치고 진실을 찾아 떠나는 두 젊은이의 여정을 그렸다고 한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해변 위의 피아노’라는 컨셉트는 미디어에 대한, 예술의 타락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통제와 억압에 대한 예술적 혁명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독립영화가 그렇듯 참으로 난해한 제작의 변이다.

그러나 그 다음날, 열여섯 살 소년이 등장해 피아노를 가져다 놓은 것은 자신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현재 고등학생인 이 소년은 유명 예술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변 위에 피아노를 놓아두고 그것이 자아내는 풍경을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상에는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피아노를 운반하는 장면까지 담겨 있으니 앞서 이야기한 영화감독 부부의 거짓말은 들통이 나고 말았다. 뻔뻔한 인터뷰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민망하지는 않았을 터. 소년은 “피아노를 누가 왜 가져다 놓았는지 미스터리로 남겨두고 싶었지만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 거짓말을 하는 통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 정부는 소년에게 당장 피아노를 치우라고 명령했지만, 이 지역에 사는 한 예술가가 피아노를 가져가겠다고 나섰다. 미국의 해양법에 따르면 바다에 버려진 물건은 원래 소유주가 누구든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다. 이 예술가는 “피아노에게 집이 필요하다”는 열 살짜리 아들의 간청을 들어주기 위해 직접 운반업체에 의뢰해 피아노를 집으로 가져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피아노가 사라진 자리에 이번에는 잘 차려진 로맨틱한 식탁이 놓여졌다. 와인까지 곁들여진 채 말이다. 누가 왜 가져다 놓았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일로 짜증이 난 플로리다 정부는 모방범죄의 가능성을 우려하며 “누구든 모래톱에 무언가를 무단 투기할 경우 당장 체포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피아노를 둘러싼 한바탕의 소동을 바라보면서, 참으로 세상에는 희한한 사람(피아노를 가져다 놓은 고등학생)도 많고, 뻔뻔한 사람(그 피아노를 자기가 가져다 놓았다고 주장한 영화감독)도 많고, 재미있는 사람(피아노가 사라진 자리에 식탁을 가져다 놓은 누군가)도 많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그 무거운 피아노를 낑낑대고 운반해 바다 한가운데에 놓아둔 그 학생의 노력이 과연 입시전형에서 얼마나 높은 평가를 받게 될지도 궁금했다. 미국의 고등학생들은 매일 놀러 다니는 줄로만 알았더니, 좋은 대학 가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김수경씨는 일간지에서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유학하고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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