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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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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처음’을 뜻하는 한자는 많다. 초(初)는 옷(衣)을 만들려면 칼(刀)로 마름질부터 해야 한다는 데서 ‘처음’이라는 뜻이 나왔다. 시(始)는 만물의 시작이 여성(女)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수(首)는 머리카락이 난 머리를 그린 것으로 선두, 으뜸의 뜻을 갖는다.

 시(始)나 수(首)처럼 사람을 이용해 처음을 나타내는 또 다른 글자로 원(元)이 있다. 원은 사람(儿) 몸 중 위(二는 上의 변형)에 있는 머리를 나타내는 자형으로서 으뜸이나 근원의 뜻을 갖는다. 그러나 원(元)에 집 면(<宀)이 더해지면 전혀 다른 뜻의 완(完)이 된다.

완(完)은 사람(元)이 완전한 복장을 갖추고 종묘(宀)에서 제례를 드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란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또 우두머리(元)가 기거하는 집(宀)으로 그 안엔 제사를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므로 ‘완전하다’는 뜻이 나왔다는 풀이도 있다.

 완전하다는 뜻은 벽(璧)과 함께할 때 더 부각된다. 옥(玉)은 동그란 공(球)이다. 옥이 둘이면 쌍옥 각(珏), 아직 다듬지 않은 원석인 옥돌은 박(璞)이라 한다. 둥글면서 넓적하되 가운데 구멍이 있는 옥을 벽(璧)이라 일컫는다. 벽(璧)과 완(完)이 합쳐진 완벽(完璧)은 티끌(瑕)만 한 흠도 없는 훌륭한 옥(玉)의 상태를 가리킨다. 훌륭한 것을 잘 보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완벽귀조(完璧歸趙)는 전국시대 조(趙)나라 대신 인상여(藺相如)가 진귀한 보물인 화씨벽(和氏璧)을 탐내는 진(秦)나라 왕의 요구를 기지로 물리치고 무사히 조나라로 갖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완전하다 또는 끝을 뜻하는 완(完)에 시작을 뜻하는 원(元)이 의미부로 들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순환론적 사고가 엿보인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이요, 시작은 또 다른 끝인 셈이다. 춘하추동(春夏秋冬) 등 돌고 도는 자연의 순환구조 속에서 살아가고자 한 삶을 표현한 것이다. 내일이면 음력 설이다. 경인(庚寅)년이 종말을 고하고 신묘(辛卯)년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쉬울 것도 또 새로울 것도 없다. 인생은 어차피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니까. 장자(莊子)는 ‘꿈속에서 또 그 꿈을 점친다(夢之中又占其夢)’고 했다. 인생은 꿈의 연속일 뿐일 터이니 크게 기뻐할 일도 크게 슬퍼할 일도 없으리라.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