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미썸딩〈Tell me something〉

중앙일보

입력

데뷔작〈접속〉(97년)으로 감각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장윤현 감독(32)과 톱스타 한석규.심은하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아온〈텔미썸딩〉이 13일 개봉된다.

〈텔미썸딩〉은 국내에서 좀체 시도하지 않은 '하드고어 스릴러' 를 표방해 '장르의 모험' 이라는 측면에서도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접속〉에서 상실의 아픔과 낭만적인 사랑에의 애틋한 기대를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낸 장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잔혹한 연쇄살인사건과, 그 '피의 잔치' 가 불러일으키는 공포쪽으로 1백80도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한 감독이 멜로와 스릴러 장르 사이의 그 널따란 간격을 단번에 '기적적으로' 뛰어넘는 일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인가.

쇼핑센터의 엘리베이터에서 혹은 집 안의 냉장고에서 시시때때로 발견되는 절단된 신체의 일부처럼 스크린에는 충격적인 영상이 선혈처럼 낭자하지만 인물들간의 관계와 그 심리적 대치상황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데에는 힘이 부쳤다.

이야기는 조형사(한석규)가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시작된다. 범인은 잔혹하게 살해한 사체들을 공개적인 장소에 유기하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그리고 희생자 모두의 연인이었던 여자 채수연(심은하)이 수사망에 포착된다.

명암 대비가 뚜렷하고 그로테스크한 영상에 보이지 않는 범인을 좇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누아르 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건의 한가운데 수수께끼 투성이의 여성이 적잖은 비중으로 배치돼 있는가 하면,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도시의 밤거리 장면처럼 영화 전반에 의혹과 비관의 분위기가 깔려있는 것도 그런 맥락 위에 있다.

장감독의 영상 감각은 이번에도 솜씨를 발휘했다. 고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세트, 각각 우수와 비밀에 휩싸인 남녀(한석규.심은하), 빗속에서 미지의 범인이 모는 자동차가 조형사를 기습하는 장면 등은 영화에 기괴한 분위기를 더하고 긴장감을 높였다.

그러나 스타일은 눈에 띄지만 복선 대신에 사건은 나열되기에 급급했고, 결말 부분의 반전은 설득력이 부족해 강도있는 마침표가 되어 주지 못했다.

조형사가 겪은 어머니의 죽음, 채수연과 친구 오승민의 관계도 치밀한 복선이 되거나 혹은 그것과 맞물리지 못해 그냥 돌출되고 아리송한 이야기에 머물고 말았다.

한편〈미술관옆 동물원〉에 이어 TV드라마〈청춘의 덫〉에서 연기력을 과시했던 심은하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연민의 대상이자 위험성을 내포한 '비밀의 여인' 이기도 한 고난도의 배역에서 그녀는 길을 잃고 말았다. 감독의 연출력이 아쉬운 대목이다.

〈텔미썸딩〉의 미덕은 스릴러 영화에 대한 도전에 있다. 잘 만든 스릴러 외화에 이미 익숙한 관객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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