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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계 마이클 샌델’ 찾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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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중앙일보가 신년 기획 어젠다로 제시한 ‘한국사, 필수과목으로 하자’(1월 10일, 11일, 12일, 14일자 4~5면에 기사 게재)의 반향이 뜨겁다. 이번엔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기획 시리즈를 준비하며 ‘우리 국사학계에는 마이클 샌델 같은 스타 강사가 없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작년 국내 출판계를 휩쓴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가 마이클 샌델 미 하버드대 교수다. 정치철학이란 낯선 분야를 대중적으로 각인시켰다. 신년 들어 EBS-TV를 통해 강연 실황이 방영됐다. 샌델의 장점은 청중과 소통하며 강의하는 것이다. 청중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풍부한 예시를 든다.

 국사학 이외의 다른 학자들로부터 종종 듣는 소리가 있다. 개인차는 있지만 국사 전공자들과 이야기할 때 뭔가 답답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공식 석상일 경우 특히 그렇다. “국사 교육 필수”라는 주장에는 압도적 다수의 독자가 공감하는데, 국사 교육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선뜻 공감하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현재 우리 학계의 중추 세력은 1970년대 초·중반 대학에 입학한 이들이다. 50대 중·후반이다. 국사학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공부를 시작할 무렵 민중사관이 유행했다. 이들은 대개 80년대 들어 석·박사 논문을 쓰는데, 주제를 보면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과 관련된 것이 많다. 국사학뿐 아니다. 대부분 학문이 민중사관 영향을 받았다. 우리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발견되는 이념적 좌편향성은 그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근·현대사 교과서 자체도 하나의 역사다. 외국 유학을 한 이들은 80년대 이미 서구에선 아래로부터 역사를 보는 민중사관이 퇴조하는 현상을 목도한다. 우리와 서구는 여러 면에서 시차가 있다. 서구에서 민중사관이 퇴조할 때 우리는 전성기였다. 서양사 전공자들은 변화에 비교적 빨리 대응했다. 유학이 많지 않은 국사학 전공자들은 상대적으로 변화가 늦었다.

 단점은 장점으로 전화(轉化)하는 데 묘미가 있다. 역사학자들의 개인적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 다이내믹함에 놀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역사의 압축적 변화는 연구자 개개인에게도 반영돼 있다. 20대 청년 시절에 혁명을 꿈꾸고 당시 일종의 시대정신이기도 했던 민중사관으로 세상을 보던 일, 90년대 들어 사회주의 동유럽권이 붕괴되는 현상을 보고 시대정신의 변화를 느끼면서 학문적 갈등을 겪었던 일, 그리고 21세기 오늘의 시점에서 개인과 국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면 그 자체가 마이클 샌델의 강의 못지않은 감동적인 스토리이자 우리 현대사의 풍부한 자양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사 분야는 스타 강사가 나올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 60여 년의 빛과 그림자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성공 사례다. 그 역동적인 역사를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피와 땀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를 통해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일체감을 느끼게 해줄 국사학계의 마이클 샌델을 기대해본다.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