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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암은 1% 희귀 췌장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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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호르몬 생성 세포에 생겨 일반 췌장암보다 순해 5년 생존률은 50% 이상
“미국 두고 스위스 간건 방사선 치료 아닌 양성자 치료 받기 위한 것”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암이 일반적인 유형이 아니라 희귀한 유형의 췌장암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은 18일 전 애플 임원의 말을 인용해 잡스가 2009년 스위스 바젤대학병원에서 신경내분비계 암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잡스는 2004년 췌장암 수술을 받은 뒤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나는 미국 췌장암 환자의 1%가량인 ‘아일렛세포 신경내분비암(islet cell neuroendocrine tumor)에 걸렸다”고 밝힌바 있다. 서울성모병원 암병원의 전후근 원장은 잡스의 병 경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췌장암이 발견되면 간에 전이되지 않게 잘라내고 방사선 치료를 한다. 이 치료를 계속했는데도 안 돼 간에 전이되니까 2009년 생체 간이식을 한 것이다. 한곳이 아니고 여러 군데 전이됐을 때 간이식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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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암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잡스의 암은 보통 췌장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하긴 하지만 결코 안심할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재발했을 가능성이 커 비관적인 전망이 다소 우세한 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췌장암은 소화액과 소화효소가 나오는 췌관에 암이 생기는 외분비계암으로 췌관선암으로 불린다. 췌장암의 80~90%가 여기에 속하고 5년 생존율이 5%에 못 미친다. 대개 1년 내에 사망한다.

 잡스의 암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을 생성하는 세포에 생긴다. 서울대병원 김주성(소화기내과) 교수는 “신경내분비계 암은 천천히 진행하며 발생자가 적어 5년 생존율이 정확하지 않다. 다만 췌관선암보다 훨씬 높다”며 “하지만 잡스는 간으로 전이된 상태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생존율이 그렇게 높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김명환(소화기내과) 교수의 전망은 더 어둡다. 김 교수는 “이번 잡스의 병가는 암이 재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인데, 간이식을 받았는데도 재발했다면 치료가 힘들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반면 낙관적인 의견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이규택(소화기 내과) 교수는 “일반 췌장암(췌관선암)과는 달리 잡스의 암은 5년 생존율이 50% 이상”이라며 “재발하더라도 치료법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허대석(종양내과) 교수는 “잡스의 암은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것이 특징이며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잡스는 왜 세계 최고의 의술을 자랑하는 미국을 두고 스위스로 갔을까. 원자력병원 김미숙(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잡스가 외신에 보도된 특수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게 아니라 양성자 치료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스위스 바젤대병원은 방사선 치료가 유명한 데가 아니어서 스위스의 세계적인 물리학 연구소 PSI(Paul Scherrer Institute)로 환자를 보낸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PSI를 다녀왔다. 2009년 잡스가 스위스에 갔을 당시 미국에도 양성자 치료기가 5~6대 있었다. 그런데도 스위스를 택한 이유는 보안 문제 때문으로 추정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황운하·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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