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서른 세명 장인들의 삶과 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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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 한 가지 일에 모든 혼을 불어넣는 사람들. 조상의 얼과 숨결을 기리며 우리의 전통문물을 올곧게 지켜가는 이들.

우리시대에 얼마 안 남은 이들 장인들을 소개하는 책이 나왔다. 도서출판 중명이 출간한 '장인 1' (박재관, 12,000원)
은 장인들의 삶과 작업과정, 작품세계를 자세히 다룬 책.

'장인' 시리즈의 첫 번째인 이 책은 영남지역의 서른 세명의 장인을 소개한다. 명주짜기, 나전장, 사기장, 모필장, 무명짜기 등 지금은 이름도 낯선 전통문물을 만드는 이들의 삶은 어렵다.

온갖 손품을 팔아 정성을 기울여 명주옷 한 벌을 만들지만, 금방 구김이 가는 단점 때문에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다. 전통 대발은 값싼 중국식 제품이나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문방사우(文房四友)
라 불리며 귀히 여겨지던 붓, 벼루, 먹과 한지 등도 처지는 마찬가지.

이렇듯 날로 사라져가는 전통문물을 평생 부둥켜 안고 '장이'로 살아온 사람들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장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60대, 나이 든 이들은 80대인 이들의 손끝 솜씨를 책으로 남겼다는 것 가치가 있지만 일간신문에 기획물로 연재했던 만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고장 김종문씨를 소개한 책 중의 한 부분.

"북소리만큼 사람을 충동시키는 소리도 많지 않다. 전쟁터에서 적진을 파고 들어 살육을 감행토록 한 게 '둥둥'쳐대던 북소리다. 북을 치는 족에선 사기가 치솟는 반면 상대쪽은 불안하고 주눅들게 마련이다....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12호 대고장 김종문씨. 그는 어려서부터 신명이 많았다. 명절 때만 되면 마을 풍물패 두를 졸졸 따랐다. 그럴 때면 어깨춤이 절로 치솟곤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5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북 만드는 일 한 가지로 살아오게 될 줄은 자신도 까마득히 몰랐던 인연이었다."

시대가 변하고 첨단제품이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사람 쓰는 물건에 담는 정성이 달라질 리는 없다. 그 정신을 간직한 우리 시대 장인들의 얼과 숨결이 길이 되물림 되었으면, 그 문화의 맥이 단절되는 일은 부디 없었으면... 서른 셋 장인들을 소개하며 저자하고 싶었던 점은 "그들이 이 시대 마지막 장인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출판사측은 현재 호남지역의 장인을 다룬 '장인2'를 준비하고 있다.

Cyber 중앙 손창원 기자

<pendo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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