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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곡백오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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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진(秦)이 천하를 통일하기 전이다. 부국양병(富國養兵)엔 인재가 필요한 법. 외국에서도 널리 사람을 구했다. 이에 한(韓) 출신 정국이란 사람이 수로(水路) 사업을 제안하고 책임자가 됐다. 지금의 4대 강 사업과 국토해양부 장관쯤이다. 그런데 모함이 시작됐다. “인력과 재력을 탕진해 국가를 피폐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외부인은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왕이 축객령(逐客令)을 내린다. 공직을 맡은 외부인은 짐을 싸라는 것이다. ‘끼리끼리 인사’로 자리를 차지하려는 신하들의 암묵적 공모(共謀)에 왕이 넘어간 셈이다.

 이때 초(楚) 출신 이사(李斯)가 나선다. 그는 백리해·상앙·장의·범수 등 외부인으로서 진을 반석에 올린 재상의 사례를 열거하고는 “태산은 흙 한 줌을 마다하지 않아 크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받아들여 깊다”고 간언한다. 간축객서(諫逐客書)다. 이에 진왕 정(政)은 축객령을 철회한다. 그가 바로 훗날의 진시황이다. 중국 최초 천하통일의 비결은 넓은 인재 풀(pool)이었던 거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지만 잘못한 인사는 ‘만사(萬死)’다.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두고 겨룰 때다. 처음엔 항우에게 승산이 있었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가 아닌가. 그런데 약점이 있었다. 자신만 믿고 남 주기 아까워해 인재를 제대로 못 쓰는 거다. 이를 한신(韓信)은 ‘부인지인 필부지용(婦人之仁 匹夫之勇)’이라 했다. 결국 항우는 자결하고, 전투력 떨어지는 유방은 장량·소하·한신 등 풍부한 ‘인재 풀’로 천하를 얻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적격 논란에 사퇴했다. 취임 초부터 ‘고소영 내각’ ‘회전문 인사’ 등 좁은 인재 풀로 비판을 받았는데, 이번엔 ‘보은(報恩)인사’가 문제가 됐다. 본인은 심히 억울했던가 보다. 사퇴문 곳곳에 울분과 개탄이 배어 있다. 그러면서 말미에 장자(莊子) 천운편의 ‘곡백오흑(鵠白烏黑)’을 거론했다. ‘백조는 씻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먹칠하지 않아도 검다’는 얘기다. 결백을 강조한 것일까. 그런데 이는 노자(老子)가 공자(孔子)를 비판한 것으로, 본디 흑백과 선악이 정해져 있는데 이렇게 살아라, 저게 옳다고 유세(遊說)해 봐야 세상만 더 혼란스럽게 하니 무위(無爲)가 최고란 말씀이다. 이 뜻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발표문 대신 ‘함분고토(含憤苦吐)’할 일이다. 그저 꾹 참고, 떠날 때는 말없이.

박종권 논설위원·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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