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소방법규 대형화재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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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리시스템이 갈수록 허술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소방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이미 최근 소방법 시행령과 규칙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이에 따라 ▶소방점검 횟수 ▶화재 예방교육 ▶방화관리책임자 선·해임 등 주요 소방관리 규정이 크게 풀려 9월 중순부터 시행 중이다.

우선 정부는 1년에 1차례 해야 했던 일반 건축물의 소방점검 횟수를 2년에 1차례로 줄였다.1년에 2차례 해야 했던 특수 관리대상(연면적 1만 평방미터 이상,11층 이상 고층 건물 등)
도 1년에 1차례로 줄이는 등 전반적으로 소방점검 횟수를 절반으로 감축했다.

소방서장이 필요할 때 강제로 시행할 수 있던 화재 예방교육 규정 역시 '교육 대상자로부터 협의가 들어와야 교육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바꿨다.

따라서 소방관이 화재훈련 중 강제로 시민들을 집에서 끌어낼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진 선진국과 달리,이번 인천 사고처럼 대형참사가 일어나도 주점 업주들을 상대로 소방교육조차 시킬 수 없는 실정이다.

소방관리 규정이 이처럼 후퇴한 것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규제개혁 조치 때문이다.행정자치부 소방행정 관계자는 "무조건 50%의 행정규제를 줄이라는 방침에 따라 소방 규제가 많이 폐지됐다"고 아쉬워했다.

지난 78년 만들어진 소방법에는 '모든 내장재(커튼·바닥재 등)
는 불연재로 사용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있었다.하지만 이 조항은 건축자재업체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85년부터 규제해소 차원에서 서서히 완화되기 시작,92년에는 있으나마나한 규정이 됐다.

올들어 소방 관련 법규 1백4건이 규제 개혁이라는 원칙하에 한꺼번에 개정된 것은 큰 문제로 지적된다.개정된 소방법규로 노래방·단란주점 일부 업소에 대해서는 규제기준이 강화됐지만 이번 참사가 빚어진 호프집·일반 주점·대중음식점 등에 대해선 더욱 소방관리가 허술해졌다.일부 소방·구청 공무원들의 비리를 없애는데만 집착,무리하게 법규를 바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방 법규의 '사각 지대'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실내장식을 위해 창문을 합판으로 막아버리는 등 내부시설을 개조한 건물이 있더라도 소방법상 일반음식점의 경우 지하층에 위치한 66평방미터 이상 업소만 소방지도가 가능하다.따라서 이번 참사를 빚은 라이브Ⅱ 호프집처럼 건물 지상 층에 자리잡은 업소는 아예 소방지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소방행정 등 재난관리 업무는 선진국처럼 관련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경우 소방관서가 건물이 만들어질 때부터 행정관청과 함께 참여,방화 시설물을 점검한다.건축허가 도면이 관할 행정자치단체에 제출되면 소방관서가 이를 함께 검토해 방화관리상 하차가 발견되면 시정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영국·뉴질랜드·호주 등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소방관들이 주택이나 공공시설에 불시로 화재대비 훈련을 발령,강제로 입주자를 대피시킬 수 있다.

생명문화운동 이규학(李圭學·방재전문가)
의장은 "최근 재난관리에 정부의 의지 부족과 규제 개혁 논리에 밀려 시민의 인명을 다루는 소방법 등의 관련 법규가 갈수록 허술해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규연 기자 <let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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