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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못난 놈, 맛난 놈 … 아귀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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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아귀의 다른 이름은 아구어(餓口魚), 즉 ‘굶주린 입을 가진 생선’이다.

몸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입이 큰 데다 배를 갈라보면 갖가지 생선이 들어 있어 어민들이 붙인 이름이다. 물텀벙이라고도 불린다. 그물에 걸려도 그 못생긴 얼굴 때문에 어부들이 그냥 버렸는데 물에 버릴 때 ‘텀벙’ 소리가 났기 때문. 아귀는 이렇게 못생겨 서럽던 생선이다.

그러다 1960년께 마산 오동동 시장의 한 할머니가 버려진 마른 아귀를 찜으로 만들며 아귀찜이 탄생하고 비로소 대접받는 생선 아귀의 시대가 열렸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아귀는 변신을 꾀한다. 이젠 유럽이나 일본 스타일은 물론 규정지을 수도 없는 가지각색 아귀요리들이 나타나 혀를 즐겁게 한다.

사람 중에서도 잘생기진 않았지만 내면을 알고 나면 매력 넘치는 사람들이 있다. 일곱 가지 아귀요리를 맛본 뒤 마주한 아귀의 얼굴 역시, 한없이 귀엽게 보였다.

글=이상은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12월~2월, 제대로 물오르지요

싱싱한 생선 냄새가 기분 좋은 노량진 수산시장. 아귀 전문 도매상 ‘아구수산(02-812-3773)’을 찾았다. 제철 맞은 아귀들이 얼음 위에 사이 좋게 누워있다. 아귀만 30년째 취급한다는 박성규(53) 사장은 “아귀는 지금이 딱 제철”이라고 했다. “12월부터 2월까지가 한창이야. 겨울이 되면 더 윤기가 오르고 살이 단단해지지.” 아귀의 가장 큰 매력을 물었다.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한 거지. 아귀는 생선과 고기의 중간 정도라고 봐. 볼살은 탱탱하고 날개 쪽은 젤라틴 같이 쫀득쫀득하고 몸통은 담백해. 간은 고단백이고.” 박 사장은 “아귀는 클수록 살이 더 쫀득쫀득해 맛있다”고 했다. 크기에 따라 대·중·소로 나눠놓는데 ‘소’가 현재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3마리에 5000원이다.

‘버거프로젝트’의 아귀버거
석쇠에 구운 탱탱 살코기, 빵과 만나

‘버거프로젝트’ 최현석 셰프의 아귀버거. 빵 속에 아귀가 들었지만 어색하지 않다.

“처음엔 실험적으로 내놨어요. 셰프 스페셜 메뉴로 한 달간 선보였죠. 그런데 반응이 의외로 좋았던 거죠. ‘버거는 버거인데 기존 버거와 다르네?’라는 반응이요. 매콤한 와사비 소스를 발라 초밥이 연상되도록 했어요. 일반 피시버거는 살이 잘 부서지잖아요. 아귀는 육질이 단단해 그럴 염려가 없어요.” -최현석(39) 셰프

크레이지 셰프 최현석의 아귀버거는 먹기 전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눈 바로 앞 석쇠에서 통후추를 뿌리며 굽는데 자글자글 익어가며 나는 냄새가 매콤했기 때문. 직접 발라낸 아귀 살을 석쇠에 굽고 와사비 크림소스·오이지·토마토와 함께 오징어먹물빵 속에 넣는다. 와사비 크림소스가 궁금하다고? 와사비가루에 생크림·레몬즙·쓰유(일본 맛간장)를 넣고 만들었다. 싸하면서 깔끔하다. 아삭아삭한 오이지도 아귀구이의 맛을 한층 산뜻하게 한다. 직화구이라 씹는 맛이 탱글탱글하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건 빵과 아귀의 조합. 갈고 튀겨서 만든 일반 피시버거보다 훨씬 ‘생선’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만 빵과 의외로 어울린다. 1만800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지하 1층. 02-3467-8430.

  ‘정식당 안주’의 아귀튀김
한 마리 통째로, 두 번 튀겨 바삭

‘정식당 안주’의 아귀튀김. 숙주와 미나리, 양파가 깔려 있다. 아귀 한마리가 통째로 나온다. 파마산 치즈처럼 고소한 아귀 간 소스가 포인트.

“새벽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사온 아귀 한 마리를 통째로 다 써요. 청주와 통후추, 소금으로 밑간을 한 뒤 튀기죠. 바삭한 맛을 내기 위해 180도에 한 번, 200도에 한 번 튀기고요. 술안주로 많이 찾아요. 포인트는 간으로 만든 소스죠.” -권오성(33) 셰프

 숙주·미나리·양파를 고추장 소스와 치킨육수에 빠르게 볶는다. 아귀는 한 마리 다 껍질째 노릇노릇 튀겨 채소 위로 얹는다. 파마산 치즈 덩어리 같이 생긴 걸 강판에 갈더니 접시 한쪽에 뿌린다. “아귀 간을 쪄서 얼린 것”이라고 한다. 아귀 간을 찌고 얼리고 갈아 만든 가루의 맛은 파마산 치즈보다 더 고소했다. 튀김은 굉장히 바삭바삭하다. 지느러미뼈까지 바삭하게 튀겨 주는데 잡고 뜯어서 먹으면 된다. 단 목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정식당 안주’의 아귀튀김은 세 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 튀김만 따로 간장에 찍어 먹는 것, 숙주·미나리·양파와 함께 먹는 것, 그리고 아귀 간을 찌고 얼리고 갈아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다. 1만 8000원. 서울 신사동. 02-518-4654.

‘하나 스시’의 아귀 간 요리
양념에 재워 쪄서 내면 입에서 살살 녹아

아귀간은 일본 선술집의 인기 안주다. 푸아그라처럼 한입에 녹아버린다.

“아귀 간은 일본의 이자카야에선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할 정도로 인기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청주와 소금·후추에 재워뒀다 15분간 찌고, 차갑게 식혀 썰면 돼요. 여성 손님들에겐 아귀 간이라는 얘기를 안 하고 ‘일단 드셔보라’고 해요. 먹고 나면 부드럽다며 놀라고 아귀 간이라는 말에 한 번 더 놀라죠.” -원창섭(32) 셰프

일본에서 아귀 간은 ‘안키모’라 불린다. 이곳에선 안키모를 폰즈 소스(식초와 레몬즙 등을 넣은 간장소스)에 담고 무와 고춧가루를 얹어낸다. 차가운 아귀 간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한 입에 녹아버리는 게 꼭 푸아그라 같다. 고소한 간의 맛에 폰즈 소스가 새콤달콤함을 더한다. 아귀 간으로 만든 초밥도 맛을 봤다.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굽고 생강과 실파를 얹어 밥 위에 올린다. 살짝 퍽퍽한 듯하면서 부드럽다. 데리야키 소스를 발라 장어초밥의 느낌도 난다. 둘 다 코스에 포함돼 있다. 점심은 4만원과 5만원 코스가 있고, 저녁은 5만원 코스만 있다. 서울 이촌동. 02-793-7733.

  ‘D6’의 아귀찜·파스타
미더덕 소스 뿌리고 미나리와 버무리고

‘D6’의 아귀파스타. 탱탱한 아귀볼살과 미나리 페스토, 파스타 면의 완벽한 조합. 토니 유 셰프의 창의력이 보인다(左). ‘D6’의 토니스 아귀찜. 구운 아귀를 하몽으로 감싸고 미더덕 소스를 뿌렸다. 미더덕 소스에서 바다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이게 무슨 소스인지 아세요? 미더덕을 통째로 간 거예요. 싱그러운 바다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미더덕 소스를 뿌리고 성게알을 올려요. 하몽(돼지다리를 소금에 절여 말린 햄)으로 아귀를 감싸 식감에 포인트를 줬고요. 아귀 파스타는 미나리 페스토로 만들어요. 미나리를 잣, 올리브 오일과 함께 갈아 파스타면을 버무리죠.” -토니유(33) 셰프

“해체하는 과정부터 보여주겠다”며 주방으로 이끌었다. 커다란 아귀를 꺼내더니 먼저 껍질을 쭉 잡아 뜯는다. 이어 양쪽 볼살을 떼어내고 지느러미, 몸통 순서로 나눈다. 몸통 살을 프라이팬에 빠르게 굽고 하몽으로 감싼다. 콩나물과 미나리 위에 얹고 지느러미도 튀겨서 옆에 놓는다. 미더덕을 갈아 만든 소스를 뿌리고 성게알을 얹는다. 미더덕의 형체는 오간 데 없지만 향과 맛은 그대로 살아있다. 짭쪼롬한 하몽과 담백한 아귀 살이 어울린다. 아귀 껍질은 튀겨 가니슈로 썼다. 차가운 간도 작게 썰어 낸다. 모양은 완전히 다르지만 기존 아귀찜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 들었다. 그래서 이름을 ‘토니스 아귀찜’으로 붙였다. 신선한 발상의 창의적 아귀찜이다. 볼살은 파스타에 넣는다. 미나리를 갈아 파스타 소스로 써 역시 형체는 없지만 촉감과 향은 파스타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탱글탱글한 볼살과 알단테로 익은 파스타, 미나리의 까슬까슬한 식감이 어우러진다. 둘 다 1월부터 2월까지만 판매한다.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문을 연다. 토니스 아귀찜은 코스요리(부가세 포함 8만8000원과 11만1000원 두 종류)에 포함돼 있고, 파스타는 단품으로 1만9800원에 판다. 서울 청담동. 02-511-9232.

  신라호텔 ‘콘티넨탈’의 프랑스식 아귀
육수에 빠진 아귀 구이, 새콤달콤하면서 심심

신라호텔 ‘콘티넨탈’의 프랑스식 아귀구이.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다.

“몸통 살만 발라 화이트 와인과 함께 구웠어요. 엔다이브(상추와 비슷한 채소)와 크레송(샐러드용 냉이)을 곁들여 향긋하게 했고요. 오렌지주스와 우유, 조개 육수로 거품을 살짝 만들어 아귀 위에 올렸죠. 저온 조리법을 썼어요. 서양요리를 자주 접하는 손님이라도 주로 도미·농어·광어 정도에 익숙한데 아귀는 독특하다며 좋아하죠. 사실 아귀는 프랑스에서도 인기 있는 식재료예요.” -최광희(50) 셰프

비주얼부터 우아하다. 담백한 아귀 구이가 오렌지와 조개로 만든 육수에 잠겨 있다. 오렌지 때문에 살짝 새콤달콤하면서도, 전체적으론 심심한 맛이다. 입에 불 나게 매운 기존의 아귀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아귀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귀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요즘 인기인 미세한 거품이 작은 포인트를 더한다. 11월부터 2월까지 맛볼 수 있는 메뉴다. 부가세 포함 9만원. 서울 장충동. 02-2230-3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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