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에게 뺨맞은 이란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사진) 이란 대통령이 지난해 초 부하인 모하메드 알리 자파리 이란혁명수비대 총사령관에게 폭행당하는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dpa통신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최근 공개한 미국 외교전문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 전문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 주재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고한 것이다.

 공개된 전문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는 지난해 1월 중순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참석해 다른 참석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국민이 질식감을 느끼고 있다”며 “상황 개선을 위해선 언론 자유 확대를 포함해 더 많은 개인적·사회적 자유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이란 정부가 2009년 12월에 발생한 시위를 유혈 진압한 직후 열렸다. 따라서 아마디네자드의 이 같은 발언은 2009년 6월 대통령선거 이후 반년 가까이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 대한 정부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자파리 사령관은 이 같은 아마디네자드의 ‘깜짝 발언’에 격분했다. 그는 “당신이 틀렸다. 이런 혼란을 불러온 당사자가 당신인데, 이제 언론 자유를 확대하자고 하느냐”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그는 아마디네자드의 얼굴을 가격했다. 회의장은 난장판이 됐고 SNSC는 이후 2주간 열리지 못했다. 아마디네자드와 자파리는 이란 최고 헌법기관인 헌법수호위원회의 아야톨라 알리 자나티 의장이 나서 중재한 후에야 간신히 화해했다고 한다. 전문에 등장한 이란 소식통은 “SNSC 중단 소식은 몇몇 이란 블로그를 통해 전해졌지만, 그 배경이 된 자파리의 폭행 사건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극상’을 저지른 자파리 사령관은 이란 군부 내에서도 초강경파에 속한다. 2009년 6월 대통령 선거 직후 부정 선거를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자 “이란 공화국을 전복시키려는 음모”라며 혁명수비대 투입을 경고했을 정도다. 또 그가 몸담고 있는 혁명수비대는 1979년 이란 혁명 후 반체제 활동을 막기 위해 설립됐으며 이란의 ‘파스다란(수호군)’을 자처하는 최정예 군사조직이다. 산하에 7개 여단 12만 명의 병력이 배치돼 있고, 반정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한 바시지 민병대 역시 혁명수비대의 통제하에 있다.

 이 같은 배경의 자파리가 같은 보수파로 분류되는 아마디네자드의 발언을 면전에서 비난하고 폭행까지 한 것은 “이란 권력 핵심부에서 심각한 내분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김한별 기자 idstar@ 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