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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쥐식빵’ 굽는 정치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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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김진국
논설실장

올해 크리스마스는 엉망이 됐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케이크의 촛불은 껐지만 칼로 자르면 쥐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터진 ‘쥐식빵’ 사건 탓이다. 일찌감치 이런 기분을 예감한 사람들은 케이크 주문을 취소해 버렸다고 한다.

 조사가 끝나진 않았지만 제빵업체의 과열경쟁 때문이라는 게 수사당국의 분석이다. 경쟁하는 옆집 가게의 평판을 깎아내려 손님을 뺏어가겠다는 계산으로 벌인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했다. 제빵업계가 모두 타격을 입었다.

 12월은 제빵업계에 황금시즌이다. 가장 수익률이 높은 케이크가 이때 집중적으로 팔린다. 크리스마스 덕분이다. 1년 동안 팔 케이크의 15%를 이때 판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연루된 두 제빵사는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24~25일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20%가량 줄었다고 한다. 적자를 걱정하는 가게마저 생겼다. 경쟁 상대에 대한 도를 넘는 음해가 업계의 공멸(共滅)을 부른 것이다.

 지나친 경쟁으로 제 발등을 찍는 일이 어디 제빵업계뿐이겠는가. 정치판이야말로 경쟁에 눈이 멀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청맹과니가 되기 일쑤다. 해머와 전기톱까지 동원해 ‘전쟁’을 벌였지만 돌아온 건 정치권에 대한 철저한 불신뿐이다. 국회 내 난투극이 전 세계 신문에 토픽으로 소개되는가 하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예산안을 둘러싼 몸싸움 장면을 올해의 사진 중 하나로 뽑았다. 해마다 해외언론의 단골 소재다. 극단적인 장면을 소개한 것이지만 평소 우리 국회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돌아보면 18대 국회는 내내 이런 꼴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디어법, 세종시 수정법안, 4대 강 사업…. 극한적 정치대립만 있었지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의 문화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1년 내내 싸움만 하다 연말에 몰아치기 하는 게 관행이 됐다. 한마디로 정치력의 실종(失踪)이다.

 이렇게 난투극을 벌여서 무엇을 얻었는가. 여(與)도 야(野)도 다음 총선 걱정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18대 국회에 대해 많은 국민이 기대를 접었기 때문이다. 속이 탄 의원들은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아수라장 속에서도 뒤로는 지역구 사업을 챙기느라 열을 올렸다. 그것으로라도 지역구민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다. 그 통에 육아지원비 등 정작 중요한 민생 예산은 뒷전에 밀려났다. 국가의 미래는 사라지고 재선에 대한 욕심만 남은 것이다.

 국회에는 국회의원이 없다. 집권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역구로 달려갔다. 의정 활동보다 표밭 관리가 다급한 탓이다. 야당의원들은 거리로 뛰쳐나갔다. 여태 찬바람 맞아가며 장외집회를 계속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제 유연한 포지티브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전국 230개 시·군·구를 돌며 장외투쟁을 계속하겠다는 말이다. 구제역(口蹄疫) 확산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가축 전염병 예방법을 처리하기로 했지만 ‘원 포인트 국회’를 한단다. 국회를 열어도 다른 시급한 민생법안들은 손댈 수 없다는 것이다. 민생법안마저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국회가 이 모양이 된 것은 결국 도토리 같은 정치인들로 채워진 탓이다. 극단적인 지지층의 여론에만 영합하려 한다. 밀어붙이기, 극한 투쟁으로 감정적인 여론을 좇고 있다. 야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철학을 갖고, 적어도 반 발짝은 앞에서 여론을 선도해야 한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말을 바꾸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머리를 비우고, 거수기·돌격대 노릇을 하면 결국 오늘의 언행에 언젠가 발목이 잡히게 된다.

 특히 외교안보 문제를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삼는 건 심각한 일이다. 명성황후 시해(弑害)사건을 두고 박은식 선생은 『한국 통사』에서 이렇게 썼다. “(대원군이 일본의 설득에) 결국 응낙하여 저들의 꼭두각시가 되니… 아, 원통하도다. 감정이 사람의 양심을 가린다더니 어찌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단 말인가.” 대원군은 일본 낭인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던 날 밤 일본의 호위를 받으며 경복궁에 들어갔다(『명성황후 복수기』). 시해를 미리 알았건 몰랐건 문제가 아니다. 결국 일본에 협력해 나라를 그들의 손아귀에 넘겨준 셈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다수결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수결로 처리할 수는 없다. 모자라는 표의 힘을 물리력으로 보충하는 건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다. 서로 다른 입장 사이에서 타협과 절충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적 리더십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고,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다. 권력에 대한 탐욕이 양심을 가려 공멸로 가는 ‘쥐식빵’을 굽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진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