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술술~ 로봇 선생님 첫 수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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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대구시 학정초등학교에서 영어교사 보조 로봇인 ‘잉키’가 어린이들에게 영어 발음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27일 오전 11시50분 대구시 학정동 학정초교 ‘잉글리시 존’. “family” “monster” “baby”…. 이 학교 어린이 8명이 선생님의 발음을 듣고 큰 소리로 따라 외친다. 이어 “I love my sister”라는 말에 “I love my family”라고 학생들이 대답한다. 어린이들의 영어 수업을 맡은 선생님은 로봇 ‘잉키(EngKey, English와 Key의 합성어)’다. 잉키는 어린이들의 영어식 이름인 ‘크리스티나’ ‘톰’ 등의 이름을 부르고 학생 앞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손준호(9·3년) 군은 “로봇과 수업을 하니 신기하고 공부도 훨씬 재미있다”며 웃었다.

 초등학교 교실에 영어교사 보조 로봇이 등장했다. 잉키는 대구지역 21개 초등학교의 방과후 학교 수업에 배치돼 내년 3월 말까지 영어를 지도한다. 이는 지식경제부·대구시·대구시교육청이 15억8700만원을 들여 로봇 29대를 수업에 활용하는 시범사업이다. 잉키는 지식경제부 ‘지식경제프론티어 지능로봇사업’의 주관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경남 마산의 합포·호계초교에서 시범운영한 발음교육과 원어민 화상교육 기능을 통합한 일체형 로봇이다. 이 로봇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0년 세계 50대 우수발명품’으로 선정할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잉키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원격강의) 로봇과 자율형 로봇이다. 텔레 로봇은 필리핀의 한 어학교육센터에서 강사가 학생들이 있는 교실을 화상으로 보며 가르친다. 강사의 작동에 따라 로봇이 움직이고 화면에 있는 얼굴(아바타)에는 찡그리거나 눈을 깜빡이는 등 표정도 나타난다. 원어민 교사가 화상 대신 로봇을 통해 학생을 지도하는 형태다. 자율형 로봇은 한국인 교사의 보조 역할을 한다. 미리 입력된 교재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단어와 문장의 발음, 회화, 영어게임 등을 지도할 수 있다. 반응은 긍정적이다. 방과 후 영어교육을 맡고 있는 이은숙(41·여) 교사는 “원어민 교사가 직접 지도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며 “발음이 정확해 어린이 영어교육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지능로봇사업단은 원어민 교사가 근무를 꺼리는 시골지역에 배치하면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잉키가 영어 교육의 지역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흥미를 유발해 영어 공부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장점으로 꼽는다.

 해결 과제도 있다. 잉키의 가격이 대당 1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싼 편이다. 학생이 말하는 문장을 인식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대구=홍권삼 기자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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