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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보 사용 실패가 더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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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호근
예비역 공군소장·전 연합사 정보참모부장

정부가 최근 비서관급 조직이었던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수석급 ‘국가위기관리실’로 격상 개편하고, 그 산하에 정보분석비서관실과 위기관리비서관실, 그리고 상황팀을 두기로 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직급을 높이고 인원을 늘려 시스템을 보강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시스템 내에서 조직원들의 능력과 그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제대로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위기관리실이 정보분석실과 위기관리실로 구성된 것을 볼 때 정보생산자(warner)와 대응결정자(responder) 사이에 어떤 관계가 형성되는지가 관건이다. 정보를 생산해 경고를 전파해도 이것이 정책결정자를 포함한 대응결정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수용성(receptivity to warning)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정보의 실패’(a failure of intelligence)가 아니라 ‘정보사용의 실패’(a failure to use intelligence)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우선 출신·교육·경험 등에서 올 수 있는 문화적 격차다. 특히 출신 배경이다. 외교안보·육해공군·정보기관·경찰 등의 안보 관련 부서 출신 조직원들이 자신의 출신 부서의 이익에 집착 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른 국가와의 공조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격차는 정보를 이해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심리적 요인이다. 늑대와 소년의 우화에서와 같이 반복되는 거짓 위협 징후로 무관심을 일으키고 이를 지나쳐 버리려는 경향, 한 번 결심한 사항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매몰비용 오류(sunk cost’s fallacy), 더 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작은 사건이나 징후를 간과해 버리는 현상 등이 그것이다. 세 번째는 시간에 쫓겨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에서 중대한 결정을 시급히 해야만 하는 대응결정자가 자신의 선입관에 의존하는 속성 때문에 정보생산자의 판단을 받아들이는 데 소극적일 수가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기제(mechanism) 중의 하나가 위기관리시스템이다. 정보생산자와 대응결정자가 시스템 안에서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문화적 격차를 해소하고 심리적인 문제를 극복, 생산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스템 내에서 사례연구 등의 평시 주기적인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 가장 좋은 예가 군에서 하는 지휘소 연습이다.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실은 앞으로 북한의 위협과 관련, 고도의 스트레스와 시간적인 제한을 받으면서도 정보생산자와 대응결정자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고, 국가안보와 관련된 현실성 있는 포괄적인 대안을 즉각 시행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위기를 대비해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토끼도 이렇게 항상 대비한다는 격언이 더욱 새삼스럽다. 신묘년(辛卯年) 토끼의 해를 맞으면서 한번쯤 되새겨 볼 만한 말이다.

장호근 예비역 공군소장·전 연합사 정보참모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