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써니리] ‘한중관계 더 악화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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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선택은 많지 않다. 당분간 한중관계는 어려운 국면을 탈출하기 어렵다."

15일 서울에서 열린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의 중국연구센터 출범식에서 정종욱 전 주중대사의 진단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많은 언론사들은 나중에 쓴 기사에서 이 발언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대부분 언급하지도 않았다.

뜻 깊고 축하해야 할 날에 암울한 진단은 어울리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정종욱 전 대사가 이 발언 다음에 "그렇지만 한중 펀터멘털은 튼튼하기 때문에 ‘파국’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앞의 발언의 무게를 살짝 부드럽게 '마시지'한 것이 언론의 레이더를 벗어나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일대 정치학 박사 출신답게, 정종욱 전 대사는 북한문제를 비롯한 정치적인 면에서 현 한중관계를 보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북한 내부 후계자 진통도 조만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중국이 원하는 대로 개방개혁으로 가는 것도 단기간 내에 기대하기 어렵다."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 사건은 한국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역할에 대해서 확실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이 두 사건은 북한을 다루는 해법차이 때문에 한중관계가 벌어지는 원인도 제공하였다.

북한문제의 해결이 단시간에 어려운 이상, 북한에 대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틀린 한중관계 역시 당분간 난황을 거듭할 것이라는 풀이다.

한편, 류우익 현 주중대사에게 중국에 관해 조언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중국통' 인사는 "한중관계가 아직 바닥을 치지 않았다"고 한 숨을 푹 쉬었다.

많은 언론들이 한중관계가 수교 후 '가장 최저점'이라고 하는 이 때, 그가 보는 양국의 관계악화는 '진행형'이지 '종결형'이 아니다. 더 나빠진다는 것이다.

정치학 원론에서 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중소규모국가는 양 강대국 모두와 같은 거리를 유지하는 이른바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한다. 그것은 두 강대국의 힘이 엇비슷할 때에 하기 쉽다. 한데, 미국의 힘이 점차 기울면서 중국과 미국 사이의 힘의 균형점이 이동하고 있을 때, 그 균형점을 항상 잘 파악하고 활용해야 하는 한국의 도전이 더 힘들어졌다는 진단이다.

정종욱 전 대사는 "한국이 어떻게 한미동맹과 한중 전략적동반자 관계를 조화시키는 것이 숙제"라고 했다. 두고 새겨야 할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써니리 boston.sunny@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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