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달라도 … 가족의 유쾌한 재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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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매가 부모를 위해 21일 결혼기념일 깜짝 파티를 열었다. 부부는 “아이 둘을 입양하니 가족이 꽉 찬 느낌”이라고 했다. 6명의 웃는 모습이 닮았다. [강정현 기자]


첫째 한준(20), 둘째 효원(13), 셋째 승준(12), 막내 희원(5)까지 네 남매가 뭉쳤다. 아빠·엄마의 결혼기념일 깜짝 파티를 위해서다. 꼬깃꼬깃한 용돈을 모아 케이크를 샀다. 축하 노래도 연습했다. 기념일인 21일, 아이들 넷이 나란히 부부 앞에 섰다. “우리 가족이 탄생한 날입니다. 엄마, 아빠 축하드려요!”

 부부는 놀랐고 또 감동했다. 아빠 이정일(52)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CJ 상무인 이씨의 가족은 입양 가족이다. 5년 전 막내 희원이를, 지난해엔 둘째 효원이를 입양했다. 이씨는 첫째가 여섯 살 때 지금의 아내 김양희(48)씨와 재혼해 승준이를 낳았다. 부부는 아이들이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서로 가족애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부부가 입양을 결심한 것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가 있는 첫째를 키우면서다. 부부는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어느 날 아내가 “아이를 입양하자”고 했다. 아내는 “한준이처럼 가정의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3년의 설득 끝에 생후 2주 된 막내 희원이가 이씨의 집으로 왔다. 아빠는 “막내딸이 애교 덩어리라 집안에 웃음이 늘었다”고 했다.

 둘째를 입양하게 된 것은 보육원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다. 아동가정체험 프로그램으로 한 달 동안 효원이를 집에 들였다. 효원이는 볼수록 정이 갔다. 좋은 가족을 만나면 잘 클 것 같았다. 주변에선 입양에 대해 반대가 심했다. 10세 아동을 입양하면 적응하는 데 10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러나 부부는 해낼 자신이 있었다. 세 아이에게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 막내가 입양의 뜻을 알게 됐을 때 언니가 의지가 되어주길 바랐다.

 효원이가 오고 나서 지난 1년은 가족에겐 도전의 시간이었다. 특히 사춘기인 승준이와 효원이의 갈등이 심했다. 부부는 가족의 화합을 위해 이사를 결심했다. 방 구조부터 바꿨다. 거실에 TV를 치우고 큰 탁자를 놓았다. 공부방을 따로 만들고 침실을 남자방, 여자방으로 나눴다. 항상 혼자 방을 쓰던 아이들이었다. 처음에 반감을 느끼던 아이들은 점점 한 공간에서 어울리는 법을 깨쳐 나갔다. 매주 가족회의도 열었다. 가족에게 섭섭했던 일을 털어놓을 기회였다.

 아이들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승준이와 효원이가 싸우는 횟수가 줄었다. 부모의 관심이 효원이에게 쏠리는 것 같아 섭섭해하던 승준이도 진심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빠를 낯설어하던 효원이가 먼저 아빠 배를 만지고 껴안았다. 아이들이 결혼기념일 축하 파티를 계획한 것은 그래서 놀라운 일이었다. 엄마는 “효원이가 오면서 우리 가족이 꽉 찬 느낌”이라고 했다. 아빠는 “입양가족에 대한 선입견이 많은데 우리 가족이 잘 이겨내고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서 6명이 함께 밴드 공연을 한다. “효원이가 가족이 된 후 첫 번째 맞는 크리스마스”라며 웃는 그들의 모습이 닮아 있었다.

글=김효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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