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전 총리에게 9억 줬다던 한만호씨 “제보자가 겁박해 검찰에서 허위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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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66·사진) 전 총리에게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고 검찰에서 밝혔던 전 한신건영 대표 한만호(49·수감 중)씨가 20일 법정에서 기존 진술을 번복했다. 한씨는 “겁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허위 진술을 했다”며 “한 전 총리에게 어떠한 정치자금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한씨의 진술에 상당 부분 의존해 한 전 총리를 기소했었다.

 서울중앙지법 22부(부장 김우진) 심리로 열린 한 전 총리에 대한 2차 공판에서 한씨는 증인으로 나왔다. 검찰 측 신문이 30분쯤 진행됐을 때 그는 갑자기 “일어나서 말하겠다”며 증인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씨는 “수십 번 검찰조사에서 일관되게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사실이 아니다”며 “검찰에 (이 사건을) 제보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서울시장 (선거) 얘기를 하면서 겁박해 어쩔 수 없이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비겁한 나 때문에 (한 전 총리가) 누명을 쓰고 계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씨의 돌발 발언에 법정은 크게 술렁였다. 한씨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한 전 총리와 함께 기소된 측근 김모(여)씨는 한씨의 발언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한씨는 “한 전 총리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하고 이 사건으로 기소되면서 고통스러워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검찰이 아니라 법정에서 밝혀야 의혹을 제대로 벗겨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검찰은 내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70회 넘게 조사 받았지만 강압수사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한씨는 “9억원 중 3억원은 한 전 총리의 측근 김씨에게 빌려줬고, 나머지는 공사 수주를 도와준 브로커들에게 성과급 명목으로 건넸다”고 밝혔다. 다음달 4일 3차 공판에서 한씨와 이 브로커들 사이에 대질 신문이 있을 예정이다. 한편 한씨는 증언을 하면서 A4 용지 6~7장 분량으로 앞뒤로 빽빽하게 쓴 메모를 참조했다. 검찰이 이의를 제기해 이 메모는 재판부에 임의제출됐다.

한씨의 진술 번복에 대해 검찰은 “법정에서 전면적으로 뒤집었다고 하더라도 검찰에서 한 진술은 유효하다”며 “검찰 진술과 법정 진술 중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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