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 미국이 원조 … 영·독·프랑스도 내달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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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거시건전성 부담금의 원조는 은행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공적자금 회수 목적으로 처음 꺼낸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보너스 잔치를 벌이는 것에 분개해 전격적으로 내놓은 맞대응 카드였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에게 빚진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거둬들이는 것이 대통령의 임무”라며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인 금융회사 50곳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밝혔다. 자산에서 기본자본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증예금을 제외한 금액의 0.15%를 매년 세금으로 거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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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이 같은 방침을 밝히자 영국·독일·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하지만 미국과는 성격이 달랐다. 미국의 은행세는 금융위기 당시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쓰인 비용을 회수하자는 ‘징벌적’ 성격의 과세였다. 반면 유럽 각국의 은행세는 이미 투입된 공적자금 회수보다는 미래의 금융위기 발발에 대비하는 대응책 성격이 강했다. 영국·독일·프랑스는 조금씩 다른 내용이긴 하지만 내년 1월부터 금융회사에 세금이나 부담금을 부과한다.

 모든 나라가 은행세 도입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 캐나다·호주처럼 금융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들은 처음부터 새로운 세금 신설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주요 20개국(G20) 차원에서 규범을 만들려던 미국과 유럽의 시도는 캐나다와 호주의 반대로 좌절됐다. 그래서 각국 사정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우리나라는 1998년 이후 금융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금보험기금과 구조조정기금 등 금융기관 부실에 대비한 정리기금 장치를 마련해 뒀다. 국내 은행들은 특별 기여금 방식으로 2002년부터 25년간 25조원을 부담키로 한 상태였다. 따라서 미국이나 유럽 각국의 은행세나 은행부담금과 같은 제도는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소규모 개방경제의 취약점이 불거지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국내 경제가 살아나고, 해외에서 투기성 자금이 들어오자 우리나라 외환시장은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의 은행세나 은행부담금이 우리나라에선 급격한 외화유출입에 대비하는 장치로 변형된 것이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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