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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제 정착 앞당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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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성현
산업은행 퇴직연금소장

퇴직연금제도는 취약한 노후보장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됐다. 기존의 퇴직금 사외예치 제도인 퇴직신탁과 퇴직보험은 2010년 말로 종료되고, 2011년부터는 퇴직금 사외적립은 퇴직연금으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당초 예상보다는 훨씬 지연되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KT, 현대·기아자동차, POSCO, 현대중공업 등 퇴직금 사외적립액 5000억원이 넘는 빅5 중에서 어느 곳도 아직 퇴직연금을 도입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금소득대체율(퇴직 직전 소득 대비 퇴직 후 연금소득의 비율)은 약 40%로 선진국의 70~80%에 비해 매우 낮다. 이를 감안하면 근로자들의 노후에 대한 불안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시장은 과열 상태다. 현재 53개 금융회사가 퇴직연금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퇴직연금 유치를 위해 과도한 보장금리, 리베이트, 계열 금융회사 몰아주기 등에 나서고 있다. 이는 결국 퇴직연금의 주인인 종업원의 수익권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첫째, 다양한 퇴직연금상품의 개발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사업자가 상품개발 및 운용 능력에 의해 평가받을 수 있도록 연금자산의 위험자산 운용한도 규제를 완화하고, 장기 투자금융 상품과 연계된 연금상품 개발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에서 만기 10년 이상 장기채의 비중이 26%인 반면 우리는 2%에 불과하다는 점만 봐도 장기 연금상품 개발이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둘째, 불공정 영업을 막기 위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각 사업자들이 공정한 틀 안에서 경쟁하도록 계열사 지원한도 등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할 시 영업을 제한하는, 적극적인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셋째,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이와 관련, 최근 정부와 시장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퇴직연금강제화연구회’의 활동은 기업의 연금 도입을 촉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새해에는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약 3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근로자의 노후 안정과 자본시장의 성숙을 이룩해 가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성현 산업은행 퇴직연금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