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현대건설 채권단이 냉정하게 판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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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현대건설 매각을 둘러싼 진통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인수대상자인 현대그룹이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에서 빌린 1조2000억원의 대출확인서를 제출했지만 채권단(현대건설 주주협의회)은 법률검토 끝에 “자금출처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채권단은 전체회의를 열어 22일까지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MOU) 해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채권단 간의 소송 공방으로 이어져 현대건설 매각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태가 꼬인 배경에는 채권단의 잘못이 가장 크다. 자신들의 이익극대화만 노려 비싼 값에 파는 데만 신경이 팔렸다. 자금조달의 투명성은 살펴보지도 않았다. 손 놓고 있던 정부도 매각 진통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현대건설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되살린 기업이다. 정부는 채권단에 주관사인 외환은행뿐만 아니라 혈세(血稅)가 들어간 정책금융공사와 우리은행이 포함돼 있는 점을 소홀히 했다. MOU를 맺고 나서 자금출처 의혹이 제기되자 뒤늦게 채권단과 정부가 허둥대고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려면 우선 현대그룹의 철저한 소명(疏明)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우량 기업으로 거듭난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면 각종 의혹을 보다 분명히 해소시켜 줄 의무가 있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자금출처 공개를 꺼릴 이유가 없다. 정부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공적자금 투입 기업의 매각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원칙을 제시해야 한다. 대우건설과 대우해양조선 매각 후유증으로 우리 경제가 얼마나 홍역을 치렀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채권단의 냉정한 판단이다.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 효력에 대한 최종 결정은 채권단의 몫이다. 채권단이 위험 부담을 떠안고 MOU대로 현대건설을 넘길 수도 있다. 인수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MOU를 해지하면 그만이다. 분명한 원칙에 따라 판단하고, 채권단이 모든 책임을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더 이상 사태가 꼬이는 것은 나라 경제에도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