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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말아주세요” … 웰다잉 서약한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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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5일 신촌세브란스병원 강당에서 300여 명이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왼쪽부터 박길준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김일순 한국 골든에이지포럼 공동대표, 이성락 가천의과학대 명예총장, 박명희 수녀, 강혜자 웰다잉 강사. [김성룡 기자]


전문직 은퇴자와 목사, 스님, 전문가들이 모여 연명치료 거부 운동에 나섰다. 건강할 때 미리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표시해 두자는 취지다. 보건복지부가 올 상반기 각계 전문가로 협의체를 구성해 연명치료 중단 제도화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하자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15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6층 은명대강당에서 열린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라는 제목의 세미나에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 세미나가 끝나자 참석자들은 인공호흡·심폐소생술 등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담은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Medical Directives)’를 작성했다. 의향서에는 ▶죽음이 임박한 상태에서 인공호흡기 등의 생명 유지 장치로 사망 시기를 연장해야 할 때 ▶의식을 회복할 가망이 없을 때 ▶치명적인 진행성 말기 질환에 이른 때 등에는 연명치료를 거부한다고 적혀 있다.

이성락 가천의대 명예총장

 참석자들은 전문직 은퇴 노인들의 모임인 골든에이지포럼 회원과 웰다잉(품위 있는 죽음) 운동을 벌여온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 회원, 그리고 일반인들이다.

이성락(72) 가천의과학대학 명예총장은 “연명치료는 의사와 환자, 자식 모두에게 부담을 준다”며 “이 같은 부담을 덜기 위해 사회지도층부터 사전의향서 작성 확산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칼럼니스트인 최철주(67)씨는 “중환자실에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이런 일이 계속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의향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의 박상균(74)씨는 “죽을 때는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 연명치료 거부를 선택했다”며 “반대하는 자식들(1남2녀)을 설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향서 원본은 본인이 갖고 사본은 생명윤리연구센터에서 보관하다가 위급 상황이 닥치면 병원으로 보낸다. 연세대 보건대학원장 겸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 손명세 소장은 “의향서가 있으면 과거 존엄사 판결을 받은 김모 할머니 가족들의 경우처럼 소송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신성식 선임기자, 홍혜현 객원기자(KAIST 교수)
사진=김성룡 기자

사전의료의향서 주요 서명자

이성락(가천의과학대 명예총장), 최철주(칼럼니스트), 손명세(연세대 보건대학장), 김일순(한국골든에이지포럼 공동대표), 박종화(경동교회 목사), 유기성(세브란스병원 목사), 박길준(연세대 명예교수), 홍양희(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회장), 강혜자(각당복지재단 웰다잉 강사), 박명희(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센터 팀장), 이윤성(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 허대석(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지현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쌍문동 노인복지센터 관장), 김수지(서울사이버대 총장), 박천만(계명대 교수), 윤영호(국립암센터 암관리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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