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미국에 '폭력 국회'가 없는 이유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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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또 주먹다짐이다. 이러니까 경제는 앞서 갔는데 정치는 아직도 까맣게 뒤진 후진국 모습이란 말을 듣는 것이다. 여야의 몸싸움으로 사무실 집기가 사방으로 날아 다니고 최초로 본회의장 출입구의 두꺼운 강화 유리문이 산산조각이 났다. 여야의 몸싸움은 보좌진들의 거친 육탄전으로까지 확산됐다. 국회의원이 날아오는 의사봉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이게 경제대국의 성스러운 국회의 모습이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미국 같으면 몸싸움에 참여한 보좌진들은 감옥형이고 폭력을 쓴 의원들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

미국 의회제도와 대한민국 국회제도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여당과 야당의 운영상 차이다. 한국에선 대통령과 같은 당이 여당이고 대통령과 다른 당은 의석 수에 관계없이 야당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의회의 다수당이 여당이고 대통령이 어느 당 소속이건 전혀 관계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출신이지만 의회는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에 공화당을 여당이라고 부른다.

공화당이 여당이 되면서 모든 위원회 위원장, 소분과위원회 위원장까지 모두 공화당 의원이 맡게 되고 야당인 민주당은 단 한자리도 갖지 못한다. 이는 선거에서 국민들이 민주당에 실망해 공화당에게 의회를 맡아 이끌고 나가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기 때문에 한국 국회 같이 위원장을 야당과 나눠 갖는 경우가 전혀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같은 공화당이었다면 모든 법안들이 일사천리로 통과 됐을 것이다. 당이 다르기 때문에 백악관과 의회는 자연히 마찰이 생기고 특히 하원과는 예산안 심의에 대해 정면충돌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정해놓은 예산통과 기일 안에 예산이 통과된 적이 그리 많지 않다. 미국의 예산 기한은 10월1일부터 시작해서 다음해 9월30일에 끝난다. 9월30일전 예산 가결에 실패하면 소위 ‘연속예산법’이란 법안을 통과시켜 전년도와 똑같은 예산으로 당분간(대개 3개월간) 정부를 운영한다.

1995년에 민주당 소속 클린턴 대통령 당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했었다. 그때 나도 재선의 공화당 하원의원이었고 깅그리치 하원의장을 중심으로 우리 공화당은 클린턴이 제출한 예산안에 제동을 걸었다. 공화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건강보험 비용, 환경부처 예산안, 정부가 제공하는 후생사업 등의 예산을 더 많이 줄이자고 주장했고, 클린턴 대통령은 줄일 만큼 줄여 더 이상 삭감은 불가능하다고 맞섰다. 이에 깅리치 의장은 적자 한도액을 의회에서 더 늘릴 수 없다며 서로 팽팽히 맞서는 바람에 연속예산법안 시효가 끝나는 11월13일 자정이 지나면서 국방부, 경찰 같은 필수적이 아닌 정부 기관들이 문을 닫게 됐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1995년 ‘정부 폐쇄’였다.

거의 20일 동안 정부가 문을 닫는 바람에 8억 달러의 손실을 보게 됐다고 클린턴은 공화당을 강력히 비난했다. 이듬해 정월 초에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도울 상원의원의 주재로 간신히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론은 클린턴 대통령의 편이었고 결국 그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섹스 스캔들로 상처 투성이였던 클린턴이 공화당의 밥 도울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의회와 대통령의 예산안 정면대결에서 국민들은 결국 의회에 등을 돌렸던 1995년 사태를 한국이 기억했으면 한다. 나라 살림에 대한 청사진인 예산안은 국민들의 생사가 걸려있는 만큼 정치적 주장과 연계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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