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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놀림감 된 이슬람채권법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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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허귀식
경제부문 기자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금융을 배우고 싶습니다.” 지난 10일 말레이시아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그런데 이 외신이 정작 쓰고 싶은 건 다음 문장인 듯하다.

 ‘이 발언은 한국 국회가 기독교계의 반발을 이유로 이슬람채권(수쿠크) 발행을 허용하는 법안을 거부한 직후에 나온 것이다.’

 한국의 언행 불일치를 꼬집은 것이다.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순방에 수쿠크 전문가들까지 대동했던 이 대통령으로서 참으로 멋쩍게 됐다.

 지난해 정부는 중동 오일머니를 끌어들이기 위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수쿠크의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다. 지난 3일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를 통과할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금융회사와 기업들도 희소식을 파트너들에게 알렸다. 그런데 이 대통령 출국을 하루 앞둔 7일 전체회의에서 어이없게 무산됐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의원님들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하루가 지난 뒤에도 그는 화가 나 있었다. “어떻게 소위를 통과한 법안이 전체회의에서 보류될 수 있습니까.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죠.”

 반대한 의원들의 논리는 ‘이슬람채권에만 면세혜택을 주는 건 특혜’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건 대외용인 듯하다. 기독교계 신문을 보니 속얘기가 나온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자 수취를 금지하는 종교적 제약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둘째, 법안이 통과되면 샤리아(이슬람율법)에 따라 심사위원회를 둬야 하는데 심사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포교활동이 늘어 결국 테러 위협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반대논리는 딱 하나로 뒤집힌다. 테러를 걱정하는 자본주의 국가들도 다 한다는 것이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국가는 물론 일본도 은행법을 개정해 앞다퉈 이슬람채권을 발행했다.

 정말 종교가 문제라면 중동산 원유 수입도, 이슬람권 원전 수출도 금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회 나가는 의원들이 주로 반대표를 던진 모양인데, 이 앞뒤 안 맞는 의원들 실명이 궁금하다.

허귀식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