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중고 신인 허영호 오늘 ‘무명 신화’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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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무대 결승에 나선 중고 신인 허영호 7단(오른쪽)이 삼성화재배 결승 2국에서 중국의 강자 구리 9단을 꺾고 반격에 성공했다. 사진은 1대1 타이스코어를 만든 뒤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복기에 열중하는 모습. [한국기원 제공]


한국의 허영호 7단과 중국의 구리 9단이 맞붙은 중앙일보사 주최 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우승상금 2억원, 준우승 7000만원) 결승 3번기가 서로 한 판씩 주고 받으며 1대1로 팽팽해졌다. 일생일대의 기회의 맞이한 ‘중고 신인’ 허영호는 과연 ‘충칭(重慶)의 영웅’ 구리를 격파하고 무명의 신화를 쓸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봐도 구리가 한 수 위라고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심상치 않다. 2국에서 반격에 성공한 허영호 쪽에 오히려 무게 중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우승자를 가리는 최종전은 오늘(10일) 오전 10시(한국시간 11시) 베이징 한국문화원에서 속개된다.

 먼저 이긴 기사는 구리다. 7일의 1국에서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죄인’이었던 구리는 비장한 자세로 승부에 임해 백으로 2집반을 이겼다. 대국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 기자들은 구리에게 호의를 보이지 않았다. 아시안게임에서 연패해 한국에 금메달을 몰아주었고 그 후에도 신예 장웨이지에게 명인 타이틀을 빼앗겼으며 중국리그에서도 우승 팀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전에서 패배했는데 이번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겠느냐고 다그쳤다. 하나 구리는 역시 강했다. 세계대회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하며 고향인 충칭의 인기투표에서 수많은 연예·스포츠 스타들을 제치고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구리는 첫 판을 맞아 화려한 감각으로 판을 리드한 끝에 먼저 1승을 챙겼다. 두 달 전부터 구리를 연구하며 이 한 판 승부에 대비해왔던 허영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허영호는 베이징까지 동행한 친구들(박정상 9단, 김지석 7단)과 함께 패인을 분석하며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프로 생활 10년 만에 처음 맞이한 결승 무대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 없다고 다짐했다. 9일의 2국은 처음부터 백을 쥔 허영호의 페이스였다. 방대한 흑진 속에 뛰어든 백은 풍전등화의 모습이었으나 구리가 큰 실수를 저지른 틈에 백은 깨끗하게 타개에 성공했고 승세를 탄 허영호는 실수 없이 밀어붙여 248수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박정상 9단은 “구리는 확실히 컨디션이 나쁜 것 같다. 아시안게임의 뼈아픈 기억을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10일의 최종전은 매번 타협과 모험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야말로 정신력의 싸움이 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천근 같은 부담감에 짓눌린 구리에 비해 허영호 쪽은 훨씬 가볍고 편해 보인다. 허영호는 “(구리 9단과 대국하면서) 압박감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내일은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며 승리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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