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판결 의미·파장] '보복성 징계' 인정한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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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는 위법,복직은 불가." 법원이 심재륜(沈在淪)
전 대구고검장에게 내려진 징계의 정당성 여부에 대해 절묘한 절충을 선택했다.

지난 1월 대전 법조비리사건 당시 沈고검장은 검찰 수뇌부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다며 "지금까지 검찰을 정치권에 예속시킨 장본인은 따로 있다"고 주장,항명파동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평검사들의 연판장 시도라는 내홍을 불러왔고 당시 검찰 수뇌부는 평검사들을 불러모아 마라톤 대화를 벌인 끝에 沈전고검장을 면직하는 선에서 수습을 시도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날 沈전고검장에 대한 면직사유가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월에 열린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든 沈전고검장의 징계사유는 세 가지.

우선 이종기(李宗基)
변호사와 대질신문을 받으라는 차장검사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데다 총장의 허락없이 근무지를 이탈했으며,기자회견에서 수뇌부를 비판해 검사로서 위신을 손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근무지 이탈과 위신 손상은 인정된다"면서도 "이 사건의 근본은 沈전고검장이 전별금과 향응을 받았는지 여부인데도 검찰총장은 이를 징계사유로 삼지 않아 결과적으로 징계가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사유만으로 행해진 것"이라고 밝혔다.沈전고검장에 대한 징계가 보복적 성격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징계의 위법성에도 불구하고 징계 자체는 취소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조직의 안정성을 배려했다.

이번 판결을 앞두고 검찰은 沈전고검장의 승소가 확실하다며 대응책 마련에 전전긍긍했다는 후문이다.검찰의 체면도 문제지만 고검장 자리가 모두 채워져 있어 沈고검장에게 내줄 자리가 없다는 현실적 고민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또 사시 8회인 검찰총장이 7회인 沈전고검장을 지휘하는 것도 거북할 수 밖에 없다.

이같은 사정을 심사숙고한 재판부가 내놓은 절충안이 "위법성을 인정하되 처분은 유지한다"는 행정소송법상 사정(事情)
판결 규정.명예와 경제적 손실은 회복하는 대신 신분상 불이익은 沈전고검장이 감수해야 한다는 취지다.

검찰은 "법원이 양쪽 손을 모두 들어준 것"이라며 그나마 다행이라는 모습이다.항소 여부는 沈전고검장의 반응을 보며 신중히 하겠다는 입장.沈전고검장측도 항소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명예가 회복됐다"며 대체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노출된 내부적 갈등과 추락한 위신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는 여전히 검찰의 과제로 남게 됐다.

최현철 기자
<chd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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