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몰락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부했기 때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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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19면

“북한이 비이성적으로 나올 때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유화적으로 나올 때는 그에 상응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합니다. 북이 도발하는데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거나, 유화 제스처를 쓸 때 괜히 강하게 나가는 것은 우호적인 국제여론을 조성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됩니다. 북한이 무력도발을 하면 그보다 더 강력한 무력시위와 응징을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하고, 북한이 평화공세를 펴고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 대범하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 함재봉(52·사진) 원장은 국제정치를 전공한 외교안보 전문가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다음 날인 24일, 남북 문제의 해법을 물었다. 함 원장은 명쾌하게 소론을 펼쳤다.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계간지 『전통과 현대』를 들고 나온 그의 출현은 참으로 반갑고도 새뜻한 사건이었다. 1990년대 동아시아 담론과 아시아적 가치 논쟁의 핵심에 그가 있었다.
우리가 거추장스러워했던 전통사상, 특히 유교를 그는 달갑게 끌어안고 미래의 대안을 찾으려 애썼다. 그것은 서구 문물과 문화가 밀려 들어오던 19세기 말부터 동아시아 지식인의 묵은 숙제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사상을 공부한 소장파 학자였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파리 유네스코 본부 사회과학국장, 서던 캘리포니아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RAND 연구소 선임 정치학자를 거쳐 올 초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연구원에 부임하던 첫날, 정몽준 의원이 부탁한 것은 단 한 가지였어요. 선친의 아호를 아무 데나 붙이지 않으니까 아산정책연구원을 꼭 세계적인 연구소로 키워 달라고요.”

그는 국가관이 뚜렷하다. 독립운동가이자 제3대 부통령을 지냈던 조부 함태영, 83년 아웅산 사건으로 순국한 부친 함병춘의 가풍을 이었다. 그의 가족이 높은 도덕성과 외교적·정치적 통찰력으로 근대와 현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작지 않다.

-국치 100년의 해가 저물어 갑니다. 망국의 원인을 짚어 주시겠습니까.
“글로벌 스탠더드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기 때문입니다. 신라와 고려는 당시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불교를 적극 받아들이고 완벽하게 토착화함으로써 융성할 수 있었고 조선은 당시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성리학을 받아들여 세계적인 수준의 문명국가를 이룩했죠. 그러나 구한말의 지도자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아보지도, 수용하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그때의 쇄국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북한의 몰락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거부가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보여줍니다.”

-행복한 세상을 위해 오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하는 일을 찾아 그 분야에서 수월성(excellence)을 추구할 때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죠. 이러한 개인들이 모여 단체를 구성하면 이상적인 사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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