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서 온 '사랑과 욕망'의 스크린

중앙일보

입력

유럽영화의 새 강자 스페인 영화 두편이 9일 동시 개봉된다.'라이브 플래쉬'(원제 Live Fresh·신선한 육체)
,'당신의 다리 사이'(원제 Between Your Legs)
가 그것이다.

제목부터 야하고 도발적이어서 한눈을 팔지 못할 지경이다.게다가 할리우드 영화 못지않은 대중 취향인데다 웬만큼 작품성도 갖췄다 해서 초가을 개봉 예정작 중 '복병'으로 꼽힌다.

두 작품의 연결고리는 위험하기 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란 점.일찍이 투우(鬪牛)
나 플라멩코춤은 우리에게 '스페인=정열'의 등식을 떠올리게 했는 데,영화는 그런 스페인 사람들의 격정적 사랑행위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둘 다 음산한 느와르적 분위기를 풍기는 점도 같다.

그러나 이를 풀어내는 방식에선 좀 차이가 난다. '라이브 플래쉬'가 탄탄한 미학에 기초한 예술영화를 지향한 반면, '당신의 다리사이'는 에로와 스릴러의 경계에 어정쩡 걸쳐 있는 '지독한' 상업영화에 가깝다.

영화 마니아들에게 '라이브 플래쉬'는 낯설지는 않은 편.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 '신선한 육체'란 타이틀로 잠깐 선보인 적이 있어서다.올 칸영화제 감독상('내 어머니의 모든 것')
수상자인 페드로 알모도바르(48)
가 연출했다.

국내에'하이힐''키카''비밀의 꽃'으로 알려진 알모도바르는 스페인 영화계의 '준비된 거장'.독특한 형식미학과 예술성으로 루이 브뉘엘('욕망의 모호한 대상' 등을 만든 스페인 출신 거장)
의 후예란 찬사도 받고 있다.원색의 화려한 색감과 성(性)
적인 유머,부조리에 대한 분방한 묘사는 그의 장기다.

그런 잔영들이 이번 작품에도 잘 반영됐다.영화 속 주인공은 다비드·엘레나·빅토르·클라라 등 4명.피를 보고 쟁취하는 게 사랑임을 웅변하듯,이들의 어긋난 사랑이 충격적으로 전개된다.

그 배면(背面)
에는 역사성도 깔고 있다.때는 1970년대 프랑코 독재 말기.그 암울했던 스페인의 정치상황을 밑그림으로 삼아 여러 인생들의 상처를 담았다.7년전 국내 상영된 '하몽하몽'의 남성 섹스심볼 하비에르 바르뎀 등 스페인 1급 배우들이 열연한다.

반면 신예 마누엘 고메즈 페레이라(42)
가 감독한 '당신의 다리사이'는 섹스 중독증과 관음증,살인 등 여러 요소를 짜깁기한 섹스 스릴러.섹스 등 인간의 감춰진 욕망에 대한 관찰력은 뛰어나지만 응집력이 약해 종반으로 가면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약점이다.

공교롭게'라이프 플래쉬'의 바르뎀이 이 작품에서도 주연했다.섹스 중독증의 바람난 아내(빅토리아 아브릴)
에게 차이는 건실한 경찰 역.'욕망의 낯과 밤' 등 알모도바르 영화의 단골 주연이었던 아브릴의 겁 먹은 듯한 큰 눈이 인상적이다.그녀의 연기에 일단 매료됐다면 관람료는 건졌다고 할 만큼 아브릴은 연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정재왈 기자
<nic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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