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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산업 지원 축소해선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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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상룡
경북대 공과대학 학장

지역경제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적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는 “앞으로 ‘지역 국가(Region States)’가 글로벌 경쟁시대의 가장 적합한 공간단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영국·프랑스·일본 등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지역 발전을 글로벌 성장의 근간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선진국의 비수도권 글로벌 도시들은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마련된 지역산업 발전정책의 산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에 수도권으로 인구 및 경제 집중 현상이 급속히 진행됐다. 자연히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지역은 단순한 산업입지 공급지로 인식됐을 뿐이다.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국내외적으로 산업 클러스터 활성화와 지역 단위의 혁신체계 구축이 국가경쟁력 강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지역은 산업정책의 주요 골자이자 중심무대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99년부터 10여 년간 추진해 온 지역산업진흥정책도 이러한 인식의 결과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완화하고 지역의 산업기반 확충,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산업진흥정책에는 지난 10년간 3조7000여억원이 투입됐다. 그 결과 단기간 내에 수준 높은 지역산업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연구개발(R&D), 기술 지원, 인력 양성 등의 수단을 제공해 기업의 매출 및 수출 증가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했다.

 경제적 성과 외에도 기업·대학·연구소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지역의 혁신역량 증대와 지역산업 육성에 대한 지자체의 인식과 기획·평가 역량이 제고되는 무형의 자산이 축적됐다. 이는 향후 지방분권과 병행해 지역 주도의 산업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지역 고유의 역량이 갖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역산업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정부의 지원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어 우려감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일부 업종의 지역별 중복투자와 지역 간 차별성 부족 등 효율성 측면에서 개선·보완할 사항은 엄존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정책 추진 방법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지 지역에 대한 지원의 축소나 중단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특히 지방분권에서 기초한 지역주도의 경제 활성화 구조가 확실하게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 지원 축소는 투자와 일자리 감소 등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지역산업 진흥 정책이 효율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기존 인프라의 활용 극대화, 지원체계의 효율화 등 정책의 질 향상에 주력해야 한다. 정부와 지역이 함께 지역산업 육성 정책의 명확한 중장기 비전과 구체적인 목표 설정, 자원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 산업 선정의 합리화와 경직된 산업 타깃팅 개선 방안 등을 고민하고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지역산업 정책 추진 체계를 기존의 ‘톱다운(Top-Down)’에서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전환해 지역이 혁신 주체가 돼 스스로 특성화 분야를 발굴하고 자율적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이 제안한 사업에 대한 검증 및 컨설팅을 수행하고 지역 간 선의의 공정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중앙주도-지역보조’에서 ‘지역주도-지역자율’형 정책체계로의 개편이 지역과 국가의 경쟁력을 동시에 제고하기 위해 구축해야 할 시급한 과제다.

이상룡 경북대 공과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