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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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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금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내 탈북자에 대한 체계적 정착지원 업무를 전담할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오늘 출범식을 연다. 탈북자 2만 명 시대를 맞는 시점에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원재단의 설립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려는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을 정부(정책 수립과 공공행정)와 민간(전문적·실질적 지원서비스) 부문의 두 수레바퀴로 굴러가도록 한 점은 의미가 있다. 재단은 탈북자 정착과정 전반에 걸쳐 생활안정지원, 취업지원, 장학사업 등을 추진하게 된다.

 정부는 탈북자 입국 규모가 증가하고 특성도 변화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제도 보완을 추진해 왔다. 올해 들어 정착 지역별 사회적응 교육을 위한 하나센터 지정이 이뤄졌고 전문상담사 제도도 신설됐다. 사회통합위원회는 탈북자 성공 정착을 핵심 프로젝트의 하나로 설정했다.

 하지만 이런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보완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이 실제로 생활하는 지역단위의 정착지원 체계는 상당한 보완이 필요한 실정이다. 전국 26개 지역에 북한이탈주민지원 지역협의회가 설치되어 있으나 아직 지역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제고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미흡하다. 다수의 실태조사는 탈북자들의 사회 적응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요인 중 하나로 ‘북한 출신’이라는 부정적 편견을 꼽고 있다. 탈북자에게 필요한 것은 일회성 행사 방식이나 재정지원이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이웃’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그들이 갖게 하고 그렇게 성장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남한 가정체험 프로그램은 하나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필자는 이달 초 부산에서 열린 하나원 145기 교육생들의 1박2일 가정체험을 참관하는 기회를 가졌다. 탈북자 정착교육 기관인 하나원의 3개월 교육과정의 하나다. 처음 가정체험에 참여한 봉사자들은 탈북 교육생들이 마음의 문을 열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였다. 자신의 집에 묵게 될 교육생들의 이름과 나이를 꼼꼼히 확인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이어지도록 준비했다.

 이튿날 경기도 안성의 하나원에서 탈북 교육생들이 부산에 도착했다. 장거리 이동으로 심한 차멀미에 시달린 교육생들이지만 마중 나온 봉사자들의 따뜻한 박수에 수줍은 미소로 응답했다. 환영식은 탈북 교육생과 봉사자들이 새롭게 가족으로 만난다는 의미에서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고 포옹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어색함은 금방 풀렸다. 모두가 새로 만난 ‘가족’의 손을 꼭 잡고 하나원 교육프로그램 중 하나인 ‘구매체험’을 위해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2주 뒤면 교육을 마치고 각자 살게 될 정착지 임대주택에서 남한살림을 시작해야 할 교육생들이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 목록들을 미리 작성해 오는 등 관심을 보였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교육생들과 봉사자들은 환송행사에서 모두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으로 손을 놓지 못했다. 교육생들을 태운 버스가 떠나자 한 봉사자는 “다시는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평가회의에서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하나원 교육생들과 같이한 1박2일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점에 입을 모았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 데 대해 감사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자녀들이 성장해 부부만 생활하고 있는 봉사자는 결혼한 자녀의 가족을 불러 탈북자들과 식사를 함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한 탈북 교육생은 자신이 방문한 가정의 할머니에게 하나원에서 싸온 간식을 꺼내드리며 고향에 두고온 어머니 생각에 와락 품에 안겨버린 일도 있었다. 이루 다 소개하기 어려운 가슴 뭉클한 사연이 쏟아졌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내년 1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현재 효율적인 탈북자 정착지원을 위해 조직을 짜고 다양한 사업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내년도 예산으로 248억원의 배정을 앞두고 있는 등 정부와 국민 차원의 지원도 탄력을 받고 있다. 탈북자를 자신의 집에 불러들여 하룻밤을 지새우며 밥을 나눠먹고 고민을 함께 얘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남한 가정 체험의 정신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사업 청사진 속에도 가득 담겼으면 한다.

이금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