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명분도 염치도 안 보이는 KBS 수신료 인상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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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KBS 이사회가 수신료 인상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월 2500원에서 3500원으로 1000원 올리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연 22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수입을 가만히 앉아서 챙기게 된다고 한다. 경영개선이나 뼈를 깎는 자구노력도 없이 말이다.

 사실 수신료 자체만 놓고 보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2500원으로 책정된 게 1981년이다. 30년 동안 동결됐던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 들어갈 돈은 많다. 2012년 디지털방송 전환에 대비해야 하고, 난시청 해소도 지속적인 사업이다. 공익 프로그램도 제작하고, 공공성이 큰 사업도 벌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적정 수준의 수신료 현실화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단, 전제조건은 공영성 강화와 자구(自救)노력 선행이다. 그래야 국민도 기꺼이 주머니를 열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번 수신료 인상안에는 공영성도, 자구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당초 KBS는 수신료를 인상하면 “광고를 줄여 공영방송으로서 독립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광고수입 비중은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KBS는 그동안 공영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로 광고수입 의존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시청률을 의식하게 됐고, 그 결과 막말 방송이나 막장드라마 등으로 손가락질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 놓고는 이번에는 수신료도 챙기고 광고도 그대로 내보내겠다고 선언했다. 공익성과 상업성을 넘나들며 손쉽게 국민의 주머니를 털고 제 잇속만 챙기겠다는 뜻 아닌가.

 공영방송 KBS의 주인은 그 회사 임직원이 아니다. 통합징수 때문에 꼼짝없이 세금 내듯 수신료를 부담하는 국민이 주인이다. KBS가 말로는 ‘국민의 방송’을 외치지만, 공영성은 외면하고 조직 이기주의엔 신경을 곤두세운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물론 수신료 인상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방송통신위원회 검토에 이어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란 미디어법 개정 취지도 살리면서 KBS가 국가 기간방송이자 ‘한국의 BBC’로 거듭나도록 해야 할 것이다.